“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

경향신문 '오피니언'

2014. 3. 27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언제부턴가 교보서점에서 건축을 책으로 바꿔 쓰고 있는 이 문장은, 원래 윈스턴 처칠이 1943년 10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회 의사당을 다시 지을 것을 약속하며 행한 연설의 한 부분이었는데, 1960년 타임즈지가 이 문장을 인용하면서 다시 인구에 회자되었다. 내가 아는 한 건축과 우리 삶의 관계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한 말이 없다.
예컨대, 오래 산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서로 달리 살던 사람들이 결혼으로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르다 보면 습관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어서 결국 얼굴까지 닮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산골 암자를 굳이 찾는 이유가 그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구제하리라 기대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건축은 우리를 바꾼다.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삶이 되고, 나쁜 건축에서는 나쁘게 된다는 것. 이게 맞는다면, 건축을 통해 인간을 조작하는 일도 가능할 게다. 그래서 예부터 절대권력을 가진 자가 건축을 통해 대중의 심리와 행동을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고대의 신전과 피라미드 등이 그런 이유로 지어지면서 민심을 장악하였고, 궁전이나 기념탑 같은 건축들은 절대권력의 영광을 칭송하게 하는 도구로 지어졌다.

이런 건축의 효과를 가장 잘 이용한 독재자들 중에는 히틀러가 단연 앞선다. 사실 건축가가 되기 위해 비엔나 응용미술대학에 시험을 쳤다가 연거푸 낙방한 이력이 있는 그는 건축가 못지 않은 스케치를 그렸고 설계를 직접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권좌를 잡자마자 최측근으로 기용한 이가 알베르트 스페어(1905-1981)라는 유능한 젊은 건축가인데, 건축의 효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아는 이 두 사람은 수 없이 많은 건축물을 계획하며 히틀러를 신격화 시켰다. 예를 들어, 스페어가 만든 1934년 뉘른베르그 전당대회장의 무대풍경. 어두운 저녁 무렵, 조명이 켜지지 않은 경기장에 수십만 명의 군중을 집합시켜 몇 시간을 방치시킨다. 모두가 공포에 질릴 즈음 무대 위에 한 줄기 조명이 비취면서 그 아래 히틀러가 극적으로 등장하고, 가운데 연단에 오르면 경기장 둘레에 설치된 130개의 서치라이트가 강력한 빛을 밤 하늘에 분출하듯 쏘아댄다. 환각에 사로잡힌 군중들은 일제히 손을 뻗으며 감격적으로 하이 히틀러를 외쳤다. 이른 바 ‘빛의 궁전’이라는 프로젝트였다.
인간을 도구화 시키는 건축, 소위 이념의 건축은 ‘제3제국’의 건설을 목표로 삼은 히틀러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유효한 통치수단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야심적인 프로젝트가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의 베를린 개조계획이다. 일부는 실현된 이 계획의 최종 목표는 중심가로인 ‘운터덴린덴’ 끝에 짓는 ‘인민의 전당’이었는데, 가운데 둥근 지붕의 높이가 무려 290미터, 직경이 250미터, 15만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이 건축은 거대한 돔형 지붕을 열주가 받치는 형상이다. 둥근 돔은 그들의 세계를, 열주는 이념의 노예가 된 대중을 상징했으니, 시민들을 나치제국의 신민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이 건축의 중요한 목표였다. 뉘른베르그 전당대회의 풍경이 상시적으로 연출될 예정이었던 이 건축은, 다행스럽게도 나치패망과 더불어 기록으로만 남는다.

나치시대에 실현되지 못한 이 건축이 부분으로나마 실현된 곳이 바로 유신시절 준공한 우리의 국회의사당이다. 이 건축은 설계할 때부터 말썽이 일었다. 권위적으로 보이고 싶었을 게다. 이 건물을 둘러싼 열주는 본체와는 아무 관계 없이 갖다 놓은 장식일 따름인데, 이를 정당화시키느라 처마가 나중에 돌출되었으니 그 논리절차가 틀렸다. 게다가, 애초에는 평지붕의 형식으로 설계되었던 이 건축이 고위층의 압력으로 설계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돔이 억지로 얹혀졌다. 가장 중요한 공간일 것 같은 이 돔의 내부는 본의회장이 아니라 현관로비의 한 부분일 뿐이어서 또 가짜다. 내부의 치졸한 장식이나 난삽한 색채, 무당집처럼 보이게 하는 야간 조명 등등은 거론도 않겠다.
이런 곳에서 삶을 살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하나같이 인격자요 지식인이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모인 이곳에서 만드는 정치풍경은 늘 파행적이고 꼴불견 아닌가. 그러니 이를 볼 때마다,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청와대는 어떨까. 우선 그 장소가 불순하다. 일제가 경복궁을 아래로 보기 위해 지은 총독관저의 터였으니 우리의 자긍심을 짓밟은 곳이다. 우러러 보아야 하는 곳이어서, 부지불식간 이 곳에 사는 분들은 우리에게 늘 높은 존재이니 그들 밑에 사는 백성이라고 늘 아래로 보고 있지 않을까. 런던의 다우닝가 관저나 워싱턴의 백악관이 괜히 시민과 같은 눈높이에 있는 게 아닐 게다.
건물은 더 심각하다. 지금의 청와대 건축은 전두환 대통령 때 시작하였는데, 정통성이 없는 통치자일수록 권위적 건물을 짓고 싶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일이다. 조선왕조의 궁을 탐했을까, 봉건시대 건축의 형식을 빌어 지었으니 이 건물은 시작부터 또한 시대착오적이었다. 우리의 옛 건축은 의당 목조로 지어야 하건만 이 큰 규모에는 무리여서, 콘크리트로 모양만 목조건축의 흉내를 내었을 뿐인 천하 없는 가짜다. 게다가 내부 공간은 외부크기를 유지하느라 어마어마하게 높고 크다. 방문하는 이들이야 잠깐 머물다 가면 되지만,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는 그 허망하게 경직된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어, 결국 몸도 마음도 정신도 그렇게 될 개연성이 짙다.
그래서 그런가. 이곳에서 산 우리 대통령들의 마지막은 늘 비극적이었다. 안 그래도 소통이 안 된다고 공격받는 현 대통령인데, 시대와 불통하고 진정성과 담을 쌓은 이 건축에서 살고 난 그분의 끝 무렵이 또 어떻게 될까.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말을 믿는 나로서는 심히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