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우리를 다시 만든다.

기독공보

2013. 5. 15

윈스턴 처칠은 1960년 타임즈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후에는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라는 말을 했습니다. 건축가도 아닌 이가 건축의 기능에 대해 이토록 적확하게 설명한 것에 전율을 느낍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이 말에 동의합니다. 예컨대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곳에서 살던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함께 살며 적응하게 되면서 그 공간이 정한 규칙에 따라 습관도 바뀌고 사고도 언어도 바뀌며 심지어는 얼굴까지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함께 산 부부는 틀림없이 닮아 있지요. 수도자가 굳이 산속의 작은 방을 찾아 거처하기를 원하는 것도 그 검박한 공간이 우리의 영성을 바로잡고 밝게 만드는데 도움 준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더디고 오래 걸리지만, 그렇게 건축은 우리를 바꿉니다.

그렇다면 건축의 뜻은 무엇일까요. 건축은 원래 있던 말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의 일본인들이 새로운 형식의 건물들을 짓게 되면서 이를 일컫기 위해 종래 자기네들이 쓰던 조가(造家)라는 단어 대신에 쓴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세우고 쌓는다는 建築의 뜻은 순전히 물리적 노동을 뜻하는 단어라 건축의 창조적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그리 탐탁지 못합니다.

인류 시작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은신처로서 건축이 있게 되었으니 건축의 역사는 무엇보다 깁니다. 건축을 가리키는 영어는 architecture입니다. 으뜸이나 근본을 뜻하는 arche와 구축의 기술을 뜻하는 tecton이라는 희랍어를 합성해서 만든 말입니다. 그러니 이 architecture를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으뜸이 되는 큰 기술이나 근본적 학문을 뜻합니다. 그만큼 서양인들은 건축을 원래부터 위대한 직능으로 생각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를 바꾸는 건축인 만큼 대단한 기술이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라는 겝니다.

예수님은 33년의 삶을 사셨습니다. 공생애 3년 전까지 30년은 세상일로 보내셨겠지요. 소년시절 잠깐 종교지도자와 논쟁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30년의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2천년 전의 30세라는 나이는 요즘의 5,60대 정도일 텐데 아마도 세상일에서도 원숙하셨을 것이고 직업적으로는 집안의 일을 물려받는 게 자연스러웠겠지요. 아버지 요셉의 직업은 목수라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에서 성극을 할 때면 예수님 집안의 분위기는 늘 목공소로 배경이 꾸며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목수라…? 제가 건축을 하면서 생긴 의문입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은 목수가 있기에는 나무가 없는 척박한 땅의 환경입니다. 집은 죄다 돌로 지었으니 목수는 뜬금없는 직업인데다 2천년 전에는 그런 직업의 분류도 있지 않을 때이기 때문에, 성경에 쓰여진 단어이지만 건축하는 저로서는 당연히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번역되기 전 희랍어로 쓰여진 성경에는 요셉의 직업이 tecton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 바로 architecture의 그 tecton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목수가 아니라 돌을 다루는 석수며, 직업의 분류가 그렇게 있기 힘든 때였으므로 요셉은 집 짓는 이요, 요즘의 직업적 분류에 따르면 바로 건축가였습니다. 그러니 집안의 일을 물려받았을 예수님도 건축가였을 게라고 상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의 서른이면 웬만큼 다 이루었을 나이이니 건축가로서도 성공했을 터이고, 건축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도 터득했을 게며 더 많은 사람을 바꾸기 위해 광야로 나가셔서 우리 인류를 바꾸려 하신 게 아닐까요? 제 상상이 너무 나갔나요?

어쨌든 건축은 우리를 바꿉니다. 이런 말이 가능합니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게 되면 좋은 사람이 되게 마련이고 나쁜 건축에서 살면 나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건축을 두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거나 자기 과시욕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하면 우리 인간의 존엄에 대한 모독이 되어 바로 범죄입니다. 제가 건축가라는 제 직업을 일종의 성직으로 여기는 이유입니다.

건축가를 뜻하는 architect의 a를 대문자로 쓰고 앞에 정관사를 붙여 the Architect라고 하면 조물주 하나님이 되는 까닭도 그럴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