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시풍경, 그 풍요로운 일상을 위한 장소- 마로니에 공원

2013. 10. 25

도시의 가장 중요하고도 특별한 성격은 무엇일까. 익명성일 게다. 이에 비해서 농촌은 본디 혈연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공동체이다. 이런 공동체를 운영하는 기본적 틀은 인륜이고 천륜이어서 별 다른 규약을 필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자의 서로 다른 이익을 구하기 위해 모여드는 도시는 서로 모르는 이들이 구성원인 까닭에 이 익명인들이 사는 집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규약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사회는 각종 법규와 조례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이를 담는 물리적 환경이 도시다. 도시라는 뜻을 같이 가지는 영어의 city와 urban의 차이가 그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구조는 그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한 법조문이 공간적으로 나타난 형태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공간을 우리는 공공영역이라고 부른다. 그 공공영역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도시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가 나타난다. 전제적 도시에서는 전제군주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종교와 이념의 도시에서는 편향된 이념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민주도시에서는 민중의 행복을 위해 그 공공영역이 형성되고 조직된다. 잘 발달된 선진사회에서는 이 공공영역이 대단히 잘 조직되어 있고 쉽게 연결되지만 덜 발달된 도시에서는 항상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이다.

 

평지에 세워, 다니기 위한 직선의 도로와 머물기 위한 광장을 의도적으로 갖는 서양의 도시들과 서울은 원래 그 구조가 다르다. 수려한 산들과 맑은 물길들이 아름다운 굴곡을 이루며 형성된 지형에 위치한 서울의 도시공간구조는 그 자연 지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 직선의 길이나 방형의 광장은 애초에 불가능하였고, 지형을 따라 이루어지는 길들은 그 폭과 방향이 제가끔 이어서, 이는 통행의 기능 뿐 아니라 모이고 헤어지는 광장의 기능까지 포함한 특유의 공공영역이었다. 그러니 이런 길에 무슨 목적이 있을 턱이 없었다. 성격은 있었지만 모든 길들이 서민들이 모여 즐기는 일상적 공간이었으며 마당이었다. 그러던 게 조선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신작로'가 이 길들을 절단하고 지형을 가로지르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러 서양식 광장이 이 땅에도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공원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평지에 지어 별도의 녹지면적을 갖추는 서양의 도시와 달리 서울은 워낙 녹지인 산에 위치하여 별도의 녹지가 필요하지 않으며 공원이라는 용도지구적 서양식 도시요소는 서울 같은 산 속 지형에서는 뜨악한 것이다.

 

 

마로니에 공원. 이 특별한 장소는, 서울이 그 정체성의 혼란을 거듭한 여태까지, 우리가 겪어야 했던 시대적 혼돈과 함께 그 장소의 혼란도 고스란히 같이 해왔다. 낙산 기슭의 땅이 서울대학교의 교정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 기억은 나무 몇 그루와 뜬금없고 부담스러운 기념물로만 남았고, 문화의 오독과 오용이 방치한 시설은 너무도 난폭하여 결국 이 장소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사와 행위들이 난폭하고 말았다. 그리고 천박한 상업주의가 전체 공간을 지배하듯 늘 느물 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지역의 가장 중요한 공공영역이건만, 늘 파행적인 행태에 의해 특정화되고 사유화되어 우리의 일그러진 현대성을 가장 처절히 노출시키고 있었던 곳이었다.

 

 

이제 이곳이 한 건축가와 행정가의 신념 그리고 공공의 지원 속에서, 어렵게 버리고 지워서 다시 태어났다. 수려한 산들을 배경으로 앉은 거대도시 서울은 우리의 건강한 도시적 삶을 형성하게 하는 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천박한 기운들을 다 걷어내고 다시 비움의 아름다움으로 우리 곁에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둘러싼 공연장을 비롯한 문화시설들이 이제야 바람직한 앞 마당과 정체적 관계를 갖게 된 것이며, 지나는 시민들이 도시의 여유와 희락을 보는 즐거움을 준 것이며, 도시의 휴일에 풍성한 축제와 의식이 만개되어 모여든 이들에게 우리의 도시 속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게 한 것이다. 물론 지난날의 기억도 남았다. 오랜 세월 동안 사계의 변화를 알리며 이곳에서 일어났던 현대사들을 목도해온 마로니에 나무들도 그대로이며 주변의 시설과 영역도 그대로이다. 다만 우리를 슬프게 했던 저열한 상혼들과 파편적 장치들을 지우고 가능한 한 비우고 넓혔다.

 

 

그러나, 이로써 마로니에 공원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도시적 삶에 바람직한 인프라시설이 갖추어졌을 뿐이며, 여기에 담기고 펼쳐지는 도시적 삶은 이제 시작이다. 과거의 기억에 덧대어 우리의 새로운 욕망과 의지를 이루는 곳이어서 이 공원의 풍경은 우리가 완성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여기에 담는 우리의 그 삶이 선의라면, 이 장소는 훨씬 풍요로운 도시적 공간으로 완성되어 있을 것이며 중요한 자산으로 후대에 넘길 것이다. 그러함으로 우리가 함께 여기에 있었다는 기억이 남아 그로써 도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편린이지만, 그게 도시의 진실 아닐까.

 

 

이 일을 이룬 이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