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도시

중앙일보

2001. 10. 20

우리의 도시구조를 가만히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계급적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도로의 체계가 그렇다. 광로, 대로, 중로, 소로처럼 넓이에 따라 그 중요도도 같이 정해져서 중요한 건물은 대개 큰 도로에 면하게 된다. 또한 같은 도시의 땅을 도심과 부도심 혹은 주변 등으로 나누어 그 격을 다르게 하여 토지의 가격이 다르고 거주하는 이들의 행동도 다르다. 게다가 지역 용도까지 상업지역 주거지역 등으로 매겨서 우리가 처한 지역의 등급에 따라 우리의 삶도 등급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도심의 상업지구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등시민 같고 변두리의 근린생활시설의 사람은 왠지 이등시민 같은 것이다.
도시의 역사에 처음 나오는 고대 이집트의 도시들은 전부가 강한 축을 중심으로 중요한 공간과 건물들이 먼저 배치되는 직선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여러 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쉽게 통치하기 위한 강력한 질서의 도시구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심축에 가까이 사는 이는 고귀한 신분이며 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덜 중요한 이가 된다. 이러한 계급적 도시 질서가 논리의 힘과 계량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 도시들의 바탕이 아닐까. 도시계획의 수법이 훨씬 발달해 있는 오늘날에도 새로운 도시들의 구조는 인구밀도와 가용면적, 교통량 등의 계량에 근거한 논리가 주도한다. 쉽게 컨트롤 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으레 중추신경계 구실을 하는 중심지역이 있고 상징적 거리와 대표적 공간과 건물이 있는 전체의 구성을 도시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물론 이런 도시가 이제는 서양에만 있지 않다. 신작로가 우리의 고유한 읍성과 고을에 들어서기 시작한 이래 우리의 도시들도 이 서양의 논리를 좇아 부단히 대로와 광로를 만들었으며 중심지역과 변두리 지역으로 도시구조를 재편하여 왔다. 또한 지난 몇 년간 이 땅에 들어선 적지 않은 신 도시들도 죄다 이런 논리로 급조된 까닭에 서울이나 부산이나 분당이나 일산이나 그 도시가 그 곳 같은 분별할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위 제 3세계에는 도시구성이 근본부터 달라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들의 고유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이슬람의 도시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슬람은 알라 아래는 모두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회여서 사회적 계급은 물론 종교적 계급마저 없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내부를 보면 기독교의 교회의 제단이나 지성소 같은 곳이 없이 커다란 회당 만이 있어 이 속에 들어 온 모두가 동등한 처지가 된다. 이 관념이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그들의 도시에는 광장도 없고 중심지역도 없으며, 상업지구나 주거지역 같은 구분이 없다. 오로지 하늘에서 빛이 쏟아 내리는 중정을 가운데 둔 ㅁ 자형 주택들이 벌집처럼 붙어 있다. 도로는 미로여서 이방인이 안내자 없이 이 도시를 방문하면 언제 빠져 나올 지 모를 만큼 그 구성이 복잡하다. 그러나 그 좁은 골목길들은 이들의 삶을 연결하는 중요한 핏줄이 되어 도시의 모든 활동이 이 속에서 펼쳐진다. 여기서는 전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몇 주택들이 더 붙거나 없어져도 전체 도시의 구성이 영향 받지 않는다. 즉 이 도시에서는 부분이나 개체가 전체보다 더욱 가치가 있으며 알라 외에는 어떤 누구도 지배할 수 없다. 이른 바 다자 중심의 사회요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인 것이다. 중심이 골고루 퍼져 있는 이런 도시를 정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슬람 도시의 한 전형이 모로코의 페즈 인데, 프랑스가 이 도시를 침략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복잡한 미로의 도시를 끝내 정복하지 못하고 인근에 다른 도시를 세웠을 뿐이었다. 중심부나 상징적 장소만 점거하면 모두를 점령한 것처럼 보이는 서방의 도시에 비해 이 이슬람의 도시는 모든 도시를 샅샅이 쓸어야만 정복이 된다. 무수히 많은 중심이 또 있기 때문이다. 모든 부분이 도시의 중심이 되어 모든 이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이런 도시를 정복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