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오만

중앙일보

2001. 9. 21

희랍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르다가, 높이 오르지 말라는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더 높이 오른 까닭에 태양의 열기에 날개가 녹아 추락한다. 높이 오르려 하는 욕망, 이는 중력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카루스의 편에 서 있어 왔다. 그 대가로 수없이 추락하면서도 조금씩 하늘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건축에서 기술의 발전도 그러하다. 건축 기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중력과의 싸움이었다. 즉 비바람이나 맹수로부터 은신처를 만들기 위해서 벽과 지붕이 필요한데, 이 지붕의 중력을 벽이 감당해야 한다. 특히 종교적 목적을 지니거나 기념할 만한 건축은 일상의 땅에서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믿은 고대인들에게 중력의 해결은 난제였다. 흙벽돌이나 석재가 주요 재료 였던 고대의 제의적 건축은 거대한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어마 어마한 벽체의 두께를 가지곤 했다. 노아의 시대에 범람했던 홍수의 공포를 기억하는 이들이 자연의 재해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높이인 바벨탑을 짓기 시작하였지만 신의 노여움으로 공사 도중 무너지게 된다. 바로 이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 결과였다.
이 문제를 고딕시대의 건축기술이 해결한다. 고딕은 버팀 기둥의 일종인 프라잉 버트레스라는 독특한 구조방식을 창안하여 지붕은 벽체가 아니라 기둥 만으로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새로운 방식은 건물을 종래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게 만들었으며, 지붕의 하중을 부담하는 일에서 벗어난 벽면은 얼마든지 큰 창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스테인드 글래스가 높은 천정고를 갖게 된 종교공간의 내부를 신비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을 가진 이 고딕 양식은 대단한 건축적 발명이었으며 그 시대의 첨단 하이테크 건축이었다. 그렇게 되었다. 하늘과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소망은 드디어 고딕 시대에 이르러 한을 풀게 된 것이다. 하늘로 오르려는 욕망- 이는 어쩌면 바벨탑을 무너뜨린 신에 대한 우리들의 도전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과 벽돌 혹은 콘크리트를 주된 재료로 하는 고딕의 건축은 재료에서 한계가 있어 지진 같은 자연 재해를 감당하지 못한다. 많은 고딕의 성당들이 그로 인해 무너지게 되었다. 급기야 우리의 욕망은, 철과 유리가 건축의 중요한 재료로서 쓰이게 된 현대에 이르러 마천루라는 이름의 고층건물을 세우게 한다. 하늘을 닦는 건물, 참으로 오만한 이름이 아닌가.
역사가 오래지 못한 신대륙 미국은 이러한 건물을 세우기에 적합한 땅이었다. 하중의 속박에서 벗어난 듯 광활한 땅 위에 수직으로 솟은 마천루는, 자유의 가치를 찾아 나라를 세운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게 그들의 이념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을 게다. 곳곳에 마천루를 세운다. 1931년에 이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381미터의 높이를 기록하며 신기원을 이룬 이래 드디어 1973년, 415미터가 넘는 높이의 쌍둥이 건물을 세계무역센터라는 이름으로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 세웠다.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인 미노루 야마자키가 설계한 이 초고층 건축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는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온갖 자연의 재난에도 굴하지 않도록 첨단의 장치로 무장한 이 건물은 수 천년 동안 하늘로 오르려 한 우리들 이카루스의 승리였으며 20세기의 시대적 기념비였고 불멸의 구조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20세기의 상징이, 어느 날 우리들 인간의 광기에 의해 무참히 무너져 내리고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비극을 목도 하게 하였다. 아 또 다른 바벨의 탑인가.
이 비극이 우리의 뇌리에서 희미해 질 때 아마도 또 다른 탑을 세울 것이라 한다. 바라건대, 이제는 이카루스의 오만으로 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이 시대의 미궁을 빠져나갈 지혜의 실타레를 찾아 악마의 광기로도 무너지지 않는 불멸의 탑이 되기를 소망한다. 복수에 사무치는 것 보다 그 지혜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희생된 이들을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