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우리의 교회 건축

기독공보

2013. 4. 19

21세기를 맞이한 2000년 ‘베니스 국제 건축 비엔날레’ 라는 전시회의 주제는 놀랍게도, ‘ 덜 미학적인, 그래서 더 윤리적인 (less aesthetics, more ethics)’ 이라는 문구였습니다. 검박한 건축이 더욱 윤리적인 건축이라는 뜻입니다. 윤리적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화려한 색채와 문양으로 장식된 건축이 아니라 만만하고 검박한 집에서 삶의 모습이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건축이 우리 삶의 그 배경으로만 있는 까닭입니다. 이런 건축이 자연의 오묘한 소리와 움직임을 섬세히 담을 수 있을 때, 이 건축은 그야말로 우리의 선함을 일깨워 이 세상에서 사는 자체를 감사하게 합니다. 우리의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을 믿게 하는 건축, 이런 건축이 좋은 건축이며 건축의 윤리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은 어떻습니까. 옆 집보다 더 눈에 띄기를 원하여 집 모양을 기괴하게 만들고 요란하게 색칠합니다. 아귀다툼하듯 붙은 간판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무질서하고 소란스러운가를 증언하고 있으며 옆집과의 통로는 닫힌 지 오래고 일과 후에는 굳게 셔터를 내려 도시와 건축은 단절되어 버립니다. 이런 도시 속에 공동체가 건강히 자랄 리 만무합니다. 건축으로만 말한다면 우리는 철저히 비윤리적 사회에 살고 있는 셈 입니다.

문제는 이런 도시 속에 있는 교회건축 모습입니다. 서울의 밤 풍경을 내려다 보면 붉은 네온의 십자가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십자가들이 다른 네온 사인과 다르게 서울의 시민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네온의 십자가들은 대부분 뾰족탑 위에 서 있습니다. 어느덧 뾰족탑이 교회건축의 형식이 된 셈입니다. 지극히 탐욕에 젖은 세속적 건물이면서 뾰족탑 만 올리고 교회라고 강변하는 곳도 허다 합니다. 이런 건축이 교회일 지는 몰라도 ‘교회적’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교회건축’을 ‘교회적 건축’과 착각하고 있는 것 입니다.

본래 교회건축은 세계 건축사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최고의 지성과 고도의 기술이 결합하여 그 시대 최고의 문화적 결정체를 만드는 일이 교회건축이었으며 그런 교회건축은 한 시대의 예술혼을 이끄는 좌표였습니다. 건축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은 그 시대의 미학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건축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 시대에 산다면 당연히 교회도 이 토대 위에서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옛 양식만을 고집하는 교회는 시대로부터 버림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만유의 주재시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교회에만 계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높은 곳에 계시다거나 성소에 혹은 제단 위에만 계시다는 믿음은 교회건축을 원시적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면 교회건축은 근본적으로 신을 감동시키는 건축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감동시키는 건축이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선하게 하고 우리들을 연대하게 하고 이웃에 열려 있는 건축을 뜻합니다. 바로 윤리적 건축입니다. 검박하고 겸손하게 서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가를 끊임없이 알려주는 건축을 의미합니다. 그런 교회가 위엄이 있는 교회입니다. 뾰족탑이 뿜는 허위의 위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 위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