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닙니다’

국방일보

2003. 4. 30

건축가라는 직업은 곧잘 변호사나 의사와 비교되는데 이 세 직업은 몇 가지 점에서 아주 비슷하다. 첫째는 그 직업의 역사가 인류 역사와 비슷할 정도로 오래되었으며, 둘째는 국가가 공인하는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전문적인 일이라는 것, 셋째는 이들 직업은 손님이 찾아와서 의뢰를 해야 일을 할 수가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 손님의 종류를 보면, 의사는 몸이 아픈 환자이고 변호사는 골치 아픈 원고와 피고인데 비해 건축가는 돈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한 꿈을 꾸는 건축주라는 것이 이 직업의 성격을 확연히 달리 한다. 즉 건축가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만들기를 의뢰 받는 사람이니 직업으로서는 참 축복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축복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건축가인 나는 오히려 이 관계로 상처를 곧잘 받는다.
나는 건축이 한 개인의 사유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비록 개인의 돈을 들여서 짓는 개인 집이라 하드라도 그 집은 우리 사회의 공동 소유라고 여긴다. 그가 지불하는 돈은 그가 사는 동안 그 집을 사용할 권한을 갖는 것일 뿐이며, 그 건축의 본질적 소유는 우리 모두라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그 집이 땅 위에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시각적인 것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으로 이미 우리들 삶의 한 풍경으로서 존재하게 된 집은 사회적 윤리의 책임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 더구나 건축은 한 시대의 중요한 기록이며 그 건축이 오래 되면 문화재가 되고 국보가 되며 세계의 유산이 된다. 그래서 건축은 문화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작은 집이라도 그 건축은 부동산의 물건으로 취급될 성질이 아니다.
‘이 집은 당신 만의 집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곤 하는 나는 일을 맡기러 오는 건축주와 곧잘 다툰다. 지금은 내 고약한 성질이 꽤 소문이 나 있어 이를 이미 알고 오기 때문에 그 다툼이 뜸하지만, 사무소를 시작할 초창기에는 많은 건축주들이 혀를 차며 돌아 가곤 했다. 크게 보이는 집을 원하는 건축주에게 옆 집보다 좀 작게 지을 것을 권하고, 새 집에서 새 삶을 꿈꾸는 이에게 되도록 새 집을 짓지 말고 헌 집을 고쳐서 쓰라고 하고, 길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집 속으로 길을 뚫고 땅을 좀 내어주어 도로를 넓히자고 떼를 쓰고, 혼자 쓰는 공간을 좀 작게 하고 공공의 공간을 더 크게 만들자고 우기는 나를 보며, 이 사람에게 일을 맡기다간 거덜나겠구나 생각하고 황급히 일어서는 게 당연할 지 모른다. 물론 그러한 건축주는 내가 설계를 해주지 아니해도 행복한 이들이다.
믿기로는 좋은 건축은 좋은 건축가가 만들지만 그 좋은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가 만든다. 반대로, 좋지 못한 건축주 앞에서는 나쁜 건축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명약관화 하니 내가 나쁘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나쁜 건축주를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그 나쁜 건축주가 생각을 고쳐 먹지 않고 그의 하수인이나 시녀가 될 건축가를 찾아 나쁜 건축을 짓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 그래서 이기적이고 천박한 상업주의에 탐닉해 있는 우리의 도시 환경을 직시할 때면 무력감에 싸여 있는 자신을 본다.
결국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은 건축가가 만드는 게 아니다. 잠재적 건축주인 대중이 만드는 게 확실하다. 그래서 오늘도 이 국방일보의 독자들에게 내가 건축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