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세운 도시- 포츠담광장과 영화’굿바이 레닌’

중앙일보 사회

2004. 4. 30

난 베를린에 가방을 하나 두고 왔어
그래서 곧 그리 가야 해
지난날 행복은
모두 그 가방 속에 있는 거야

파리 마들렌 거리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5월의 로마 시내를 걷는 것도 아름답지
여름 밤 빈에서 혼자 마시는 와인도 좋지만
그대들이 웃을 때
난 오늘도 베를린을 생각해
베를린에 가방을 하나 두고 왔기 때문이야

베를린 출신이면서 나치를 피해 할리우드에 간 후 미국병사를 위해 노래 불렀던 세기적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 그녀가 종전 후 그토록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으나 상처 받은 베를린시민들은 조국을 등졌던 그녀에게 할리우드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떠나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녀였지만 이렇게 노래 하도록 진정한 고향이었던 베를린은 1992년 그녀가 파리에서 죽자 그 주검을 옮겨와서 장례를 치르고 그녀의 어머니 곁에 묻어 주었다.
이 일은 베를린시민들이 가진 회한과 슬픈 애정의 일단을 확인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녀의 땅 베를린, 이 도시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들이 즐비한 유럽에서는 대단히 젊은 도시다. 1237년에야 역사에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다라는 것은 그런 연대보다는 이 도시가 내뿜고 있는 에너지 때문인데, 그 에너지는 신생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저돌적이거나 모험적인 게 아니라 깊은 성찰과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그 무게가 몹시 무겁다.
베를린에 관한 어느 책 첫머리를 보면 이 도시를 가리켜 명상과 대화, 교환의 메트로폴리스라고 했다. 명상의 도시 베를린. 그렇다. 이 도시에 가면 어디에서도 우리 인류에 대한 존엄을 성찰하게 하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냥 철학적이나 관념적인 명상이 아니라 실존했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고 그를 우리의 현실 속에 다시 되살리는 것이다.

베를린을 가로 지르는 중심도로인 운터덴린덴에 노이에바헤라는 고전주의 형식의 석조건축이 하나 있다. 독일 근세건축의 거장인 칼 프리드리히 슁켈이 지은 이 단아한 건축은, 죽은 병사를 안고 있는 어머니 조각이 있는 지극히 경건하고 검박한 내부 공간을 가지고 있어 모든 방문자들을 여미게 한다. 애초에 왕의 경비초소로 쓰였지만 쓰린 역사를 가진 베를린은 이를 ‘전쟁과 폭정의 희생’을 기념하는 건축으로 만들어 이 도시가 가진 침묵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건너편에 있는 베벨광장에는 나치가 유태인과 관련된 책들을 불태우게 한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물이 있다. 그냥 비워져 있는 넓은 광장 가운데 1m 남짓한 크기의 유리덮개가 있고 그 속에 밝은 지하 공간이 있는데, 비워진 백색의 서가만 있어 지성의 학살을 침묵으로 전하고 있다. 바로 그 앞 바닥에는 동판 위에 쓰여진 하이네의 글이 있다. ‘ 책을 불사르는 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다. 그는 결국 인류도 태우게 된다.’
인근에는 유태인 교회당 폐허 그대로를 기념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고 홀로코스트 기념관들이 즐비하며,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에는 공산주의의 폭정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념물 등 시내 곳곳에 과거의 상처를 기리는 건축과 장소가 부지기수지만 지금도 또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성찰하는 도시요 존재의 근본을 묻는 모습을 다듬고 다듬는 도시가 베를린이다.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인 도시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문화를 목적으로 하면 문화도시가 되고 경제가 목적이면 상업도시며 권력에 봉사하면 봉건도시가 되고 편향된 사상을 상징하게 되면 이념도시인데, 그에 따라 우리 삶의 형태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중에서 우리를 가장 피폐화시키는 게 이념도시이다. 이런 도시에서는 인간을 도구화시키기 때문이다.
알베르트 슈페르라는 건축가가 있었다. 히틀러가 총애한 이 사람은 나치제국의 2인자적 지위를 누린 파시즘 건축가였다. 히틀러와 나치제국의 영화를 과장하기 위한 도시와 건축을 짓는 일에 몰두한 그의 건축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파쇼에 대한 광신이었으며 그런 건축은 극도로 인간을 왜소하게 하고 마비시키며 파멸케 하는 힘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히틀러가 ‘세계의 수도’라는 이름으로 1938년에 이 왜곡된 건축가를 시켜 베를린에 세우기 시작한 ‘게르마니아’가 바로 그런 도시의 전형이었다. 오랜 역사의 문화적 흔적들을 깡그리 지우며 무려 15km에 달하는 직선도로를 내고 그 도로의 끝에 170m가 넘는 돔의 제국의사당을 그렸던 도시, 비뚤어진 민족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슈페르와 히틀러의 광신적 신전을 위한 이 허망한 도시는 2차대전의 종언과 함께 전대미문의 폐허가 되고 말았다.

참상을 딛고 일어선 베를린 시민들이 폐허 위에 제일 먼저 세운 도시는 문화도시였다. 무너진 베를린 필하모니 홀을 다시 세우고 베를린 미술관 신관과 국립도서관을 연이어 문화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켐퍼광장에 지으면서 베를린은 다시 중요한 문화적 생산기지가 된다. 이 광장 옆에는 베를린 장벽이 지나가는 포츠담광장이 있어 동베를린에 대해 민주주의의 우위를 선전하기에도 제격이었다. 이 포츠담 광장은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의 중심으로도 불릴 만큼 베를린의 문화적 중심지였으나 폐허가 된 이곳에 장벽까지 서게 되면서 이 장소는 20세기 이념 대립의 중요한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 1989년 11월 9일, 근 반세기의 갈등 속에서 온갖 비극적 현대사를 기록하던 이 장벽이 무너졌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었으며 온 세계가 충격과 환호로 뒤엉킨 날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놀랍게도 다임러 벤츠와 소니는 연합하여 이 포츠담광장지역 15만평을 재개발하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필시 저 거대 재벌은 이 역사적인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한 것이다.
그 이후 그들의 말대로 이를 위해 국제설계경기가 비상한 관심 속에 진행되었고 논란 끝에 상업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안이 채택되어 실현된다. 막대한 자본으로 호화 빌딩들로 채워진 현란한 도시를 세운 것이다. 자본주의의 승리였으며 화려한 네온사인이 과거의 비극을 씻는 새로운 도시라고 믿었을 게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완벽히 지우고 나타난 이 도시는 기괴할 정도로 큰 둥근 천정을 만들어 온갖 괴성과 어지러운 부호로 가득 채운 후 인근 문화로 세운 도시를 위협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에 맞추어 이 도시가 완공되고 있을 때, 런던에서 발간된 ‘빌딩디자인’이라는 건축신문에 이 도시를 비판하는 글이 실렸다. 글 제목은 ‘자본이 붕괴시킨 역사의 도시’ 다. 장구한 세월 동안 쌓여 온 역사의 흔적을 지운 후 천박하게 분칠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건축 지성의 학살이라고 까지 했다.

2003년 독일영화제의 각종 상을 휩쓴 ‘굿바이 레닌’이라는 영화 속에 그려진 베를린의 모습이 있다. 베를린 장벽이 제거되는 동안 의식불명에 빠졌던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아들 알렉스는 현실과 반대되는 상황을 만들어 열성 공산당원이었던 어머니가 꿈꾸는 세상이 현실이 되었음을 거짓으로 알린다. 수 많은 이들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서 동 베를린 쪽으로 오는 조작된 방송화면을 보이며 낭독되는 성명서는 이런 내용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통 받던 이들은 새로운 꿈에 부풀었습니다. 출세와 향락만이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아닙니다. 물질보다 더 값진 것-선의와 노동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 볼프강 벡커는 포츠담광장 위에 세워진 이 분별없는 도시를 경멸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을 꿈꾸던 베를린 시민들에게 나타난 이 허무한 향락의 도시를 그들은 기억해야 했으므로 이 영화는 그 기념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