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용과 열림원

2014. 3. 04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땅을 점거하여 짓는 건축은 그 소유가 누구이건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주변에 거주하는 이들뿐 아니라 지나가는 이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건축이 지녀야 할 첫 번째 가치는 그래서 공공성에 있다. 만약, 건축주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대립할 때, 건축가는 사회편을 들어 건축주를 설득해야 하며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그 일을 결연히 중단해야 한다. 이 어려운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자만이 바른 건축가가 된다. 이런 건축가를 시대가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기용이 그러했다. 그를 가리켜 건축계의 공익요원, 공공건축가라고 칭한 까닭이다. 그러니 그런 건축가는 탐욕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와 늘 긴장하고 다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믿음이 존중되어 그 토대 위에 건축을 짓는 일에는,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그가 가진 온갖 건축적 서사와 상상을 동원하며 그에게 주어진 땅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곤 했다. 그래서 그의 건축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의 모티브가 있고 공간의 희롱이 있으며 사유를 위한 알레고리가 널려있다. 열림원이 그 대표적 건축이다. 자연을 존중하여 만든 건축적 구릉과 땅 속에 구축한 집합의 공간, 우주로 항해하는 듯한 옥탑의 모양, 그 속을 꿰뚫고 지나는 길과 마당들 등등. 이 모두가, 이 속에 거주하게 되는 이들의 삶에 대한 그의 지극한 애정과, 이 건축이 놓이는 땅에 대한 그의 경의가 만든 아름다운 세계이다. 그래서 비록 66세의 일기로 3년 전 3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는 우리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 건축을 통해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