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형식

중앙일보 사회

2011. 3. 19

지난 주말, 우리시대 위대한 건축가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정기용. 건축이 가져야 되는 최우선의 가치가 공공성이며 그게 건축의 윤리임을 온 몸으로 실천하다, 기진하여 단명하고만 건축가였다. 나는 그분을 형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따랐다. 이십 년 넘도록 늘 같은 지대에 서 있는 것을 기뻐하였고, 많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을 자랑했으며, 이 시대 바른 건축을 위해 우리의 가난한 의기를 곧잘 투합시켰다. 특별히, 우리는 많은 여행길에 같이 올랐다.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삶의 풍경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로 준비 때부터 항상 설레었고, 마치면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도, 여러 곳에 있는 죽음의 형식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각별했다.
프랑스의 남쪽, 세트를 들러 산등성이에 있는 해변의 묘지 속에서 폴 발레리를 찾아,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그의 싯구를 기억하며 좋아했고, 지중해 속에서 숨을 거둔 르 코르뷔제가 스스로 그린 묘비를 찾기 위해 지중해변 마을 카프마르텡을 감격하며 뒤졌다. 이탈리아에 가서는, 베네치아 묘지의 섬 산미켈레 속을 산책하며 베네치아인들이 안식하는 방법을 확인했으며, 모데나에 올라가서 알도 로시가 세운 산카달도 공동묘지를 찾아, 죽은 자들이 이룬 도시의 풍경이 산 자들의 도시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서로 논의했다.
우리는 차를 몰고 가다가 사이프러스 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두른 곳이면 으레 묘지인줄 알았고, 내려서 그 풍경 속을 거닐었다. 새로이 방문하는 도시에서는 일상의 삶을 위한 공간을 탐닉한 후에는 반드시 그들이 죽어 만든 풍경을 찾아 나섰다. 그들의 마을에는 죽은 자의 마을이 늘 가까이 있었고, 그 구성은 산 자의 마을을 축약하거나 번안한 것이 대부분임을 확인했다.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묘역을 보며 오래된 유대의 마을을 자연스레 연상했고, 그게 베를린에 피터 아이젠만이 만든 홀로코스트 기념물과 닮았음을 알고 웃었다. 스위스의 티치노 지방의 이라냐에 놓인 작은 묘원에서는 지극히 아름다운 침묵을 발견한 후, 그들의 마을이 그 연장에 있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 마을의 어귀마저 경건해 보였다. 알프스의 마을 쿠르의 공동묘지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평화를 목도했다. 그래서 독일어로 묘지는 평화의 마을을 뜻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스톡홀름에 있는 우드랜드 공동묘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옹고집쟁이 건축가 시구드 레베렌츠의 건축적 서사로 이루어진 그 죽은 자의 세계는,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성서적 풍경이었으며, 그래서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우리는 우리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면, 이내 정기용선생과 나는 우리들이 가진 죽음의 풍경에 좌절하였다. 집값의 하락만을 걱정하는 천박한 물신주의는 죽음의 형식을 우리 주변에서 내쫓아 우리의 도시에서 경건은 눈에 찾고 보아도 볼 수 없게 되었음을 한탄하였다. 저 멀리 외진 곳으로 몰린 묘지들은 하나처럼 기괴한 돌 장식으로 범벅이 되어, 그 천박함에 절망하였다.
그래서 선생은 화장을 하라고 하셨고 고향에 뿌려지기를 원했을 게다. 그러나, 선생의 유해를 모시고 간 벽제화장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역 대합실 같은 사나운 분위기에, 몰지각한 선전벽보에, 인간미 없는 안내방송에, 게다가 염불소리 목탁소리 찬송가소리 기도소리… 아아, 울음과 슬픔마저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예의 없는 화장장은 죽음마저 희화화하였으니, 갑자기 선생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이 엄습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선생의 유분을 모시는 납골묘의 현장에 가서, 그 저질스러운 죽음의 형식을 다시 보고는 차마 선생의 영정을 마주할 수 없었다. 괴기스러운 석곽과 비석의 모양을 조금이라도 바꾸려 관리소에 문의했더니 규정위반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작별하면 안 되는데…형,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유홍준교수와 건축가 김영섭선생과 같이 돌아오는 길에 그 죄스러움을 자책하면서 이런 제안을 하였다. 혹시 우리 가까이 있는 망우리 공동묘지를 아름다운 죽음의 형식으로 다시 가꾸면 안될까? 그러고 보니 시대의 인사들이 거기에 묻혀 있는 것을 알았다. 한용운을 비롯하여 이중섭, 방정환, 조봉암, 지석영, 박인환, 오세창, 문일평, 이인성 그리고 안창호까지…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이름들을 다 대며 망우리를 문화재로 지정할 명분을 찾았다. 안 그러면, 우리가 가진 못된 천민적 개발의식이 이 망우리마저 저 멀리 내쫓아버릴 몰염치의 가능성이 너무도 농후한 것이다.
이미 역사가 된 이 장소부터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은 자의 도시로 만들면, 우리들 죽음의 형식이 일거에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죽음이 늘 우리 속에 있어 우리의 삶이 오히려 아름다우며, 그러므로 우리의 도시도 천박한 욕망에서 벗어나, 모여 사는 경건함을 그래도 조금은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