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건축의 한 단면

중앙일보 '중앙시평'

2018. 11. 17

시드니가 자랑하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하마터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한 건축이었다. 1957년 국제설계공모가 열렸을 때, 28개국에서 응모된 223개 작품의 1차 심사에서 이 설계안은 탈락되고 만다. 그런데 네 명의 심사위원 중 에로 사리넨이 늦게 심사장에 도착하여 이 안을 다시 심사에 부치며 설득한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건축도 시(詩)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명작의 설계자는 그때까지 무명이던 덴마크의 40세 건축가 요른 웃손이었다.

파리 퐁피두센터도 그랬다. 1969년 국제공모에서 무려 49개국 681개 설계안이 제출되어 필립 존슨, 오스카 니마이어 같은 세계적 건축가들이 심사한 끝에, 30대 백수 건축가 리차드 로저스와 렌조 피아노의 안이 선정되었다. 지금은 넘볼 수 없는 세계적 거장이 된 이들의 안은 덕트나 엘리베이터 등 내부에만 있던 설비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외관을 이루고 내부는 자유롭게 비웠으니, 이는 공간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뒤집는 혁명이었다.

이렇듯 세계적 걸작의 탄생에는 설계 공모의 역할이 지대하며 그로 인해 문화가 진보하게 된 경우가 수없이 많다. 물론 심사가 공정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앞의 경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반 공모의 형식이지만 참가작의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 저명 건축가를 지명하여 경쟁하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 DDP로 알려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대표적이다. 국내외 건축가 8명을 초청하여 지난 2007년에 시행된 이 국제경기는 얼마 전에 타계한 자하 하디드의 ‘환유(還遊)의 풍경’이라는 제목의 설계안을 당선시켰고 그녀 특유의 우주선 같은 작품이 서울에 세워졌다.

실은 나도 이 8명의 초청건축가에 포함되었다. 켕기는 게 있었다. 이 땅에서 짓는 건축이며 심사인데도 굳이 영어로만 설명하라는 것에 심사가 뒤틀렸고, 국내외로 구성된 7명의 심사위원 면면이 내 건축관에 호의적이지 않은 듯해서 더 그랬다. 결국, 없어진 서울 성곽을 복원하고 사라진 지형을 회복하며, 동대문경기장의 기억을 보존하자는 내 설계안은 여지없이 탈락된다. 심사위원의 성향을 고려해서 참가해야 하지만, 그 장소가 워낙 중요하여 결과와 관계없이 내 건축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 심사위원 중에는 다이아나 발모리라는 미국 조경가가 있었다. 바로 세종시 통합청사의 설계자다. 세종청사의 설계 공모는 DDP의 공모 심사가 있기 몇 달 전이었다. 그녀가 제출한 ‘Flat City, Link City, Zero City’라는 제목의 안이 당선작으로 결정되자 모두가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이 공모에서 또 3등에 그친 나의 설계안도 관청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제안은 모든 제도와 관습을 뛰어넘는 파격이었다. 가운데의 언덕을 둘러싸고 모든 부처가 하나의 건물로 연결된 환유의 풍경이었다. 위에서 보면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했으며, 녹지는 땅에서부터 지붕으로 이어져 시민들이 자유롭게 노닐도록 한 유기체였다. 그러나 이 건축을 과연 관청으로 쓸 수 있을까?

발모리는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2013년, 완공된 통합청사를 처음으로 방문한다.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설계의 중요한 모티브이던 완만한 언덕과 부드러운 굴곡의 지형이 사라진 것을 보며 좌절했고, 물 흐르듯 연결되어야 하는 건물은 부처마다 쇠 울타리로 절단하며 파편화되고 옥상은 접근할 수가 없었다. 형태는 유기적인데 공간은 분절된 불구적 실체 앞에 발모리는 망연자실하며 한탄했다. 실행과정에서 난도질당한 것이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도 저도 아닌 공간에 칸막이 많은 우리의 행정체계는 옛날 그대로여서 공간과 업무가 계속 부딪힌다. 복잡하고 멀고 좁고 불편한 이 청사는 특별한 처방이 추가로 필요한 게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 마지막으로 지어질 행정안전부 청사가 이 문제를 해소하여야 했다. 그러나 짧은 설계공모 준비기간 동안에도 잡음이 적지 않게 들리더니 불과 56개의 설계안이 제출된 국제공모 심사에서 위원장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총괄건축가가 결과의 불공정을 외치며 사퇴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석연찮게 선정된 안이 기존 청사의 불편을 애써 외면할 뿐 아니라 발모리의 설계 개념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어 전체가 희극적 풍경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는 간과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발주자, 주최자, 응모자, 심사자 모두 난국에 빠지고 만 이 일은 현재 한국 건축계를 둘러싼 불건전하고 후진적인 상황을 신랄하게 드러낸 단면이다. 이 일을 잘 매듭짓지 못하면 한국 건축의 미래는 여전히 어두울 게다. 물론, 나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