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불가능한 사회의 생태적 회개

경향신문 '오피니언'

2021. 6. 16

화상회의여서 그랬을까? 요즘 연이어 외교에서 괄목할 성과를 올리는 우리 대통령의 주도로 세계 지도자들과 주요기관이 머리를 맞댄 지난달 말의 P4G라는 국제행사가 각광받지 못하고 슬며시 넘어가고 말았다. 심각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전지구적 연대를 이루자는 이 회의가 그래도 궁금하여 P4G의 뜻부터 찾아보니 G로 시작되는 네 단어였다. Green Growth Global Goal. 성장이나 글로벌, 목표, 이런 단어들에 회의적인 나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Green도 그렇다. 우리가 이 단어를 상투적으로 대하는 것을 나는 안다. 예컨대, 건축은 대충 짓고 그 위를 녹색으로 슬쩍 장치하고는 생태회복이라고 주장하는 억지, 말 그대로 가식이고 위선인 경우가 하도 많아서다. 땅을 들쑤셔서 지어야 하는 건축은 본래 반자연적이며 그래서 환경파괴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환경을 보존하자면 되도록 새 건물을 짓지 않아야 하며, 기존 집을 가능하면 고쳐 오래 쓰는 게 옳다. 바로 도시나 건축의 지속가능성이 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말이며 그래서 P4G의 의제 중 하나였던 지속가능한 공동체라는 대목에 눈이 갔으나 내용은 별무해서 또 시큰둥하고 말았다.

지속가능한 공동체. 지구상에 가장 오래 지속되는 도시는 어디일까? 구약성경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가나안에 들어가 첫번째로 점령한 성읍이 여리고(Jericho)인데, 기원전 9천년에 있었던 지구상 최초의 도시로 지금껏 알려져 있다. 흙으로 지은 고대도시의 발굴 현장 바로 옆에, 지금도 만 6천명이 이 도시 이름을 그대로 쓰며 살고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속의 삶인 셈이다.

그러나 여리고의 옛 도시는 폐허로만 남고 지속되지 않았다. 원래의 도시구조 그대로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가장 오랜 도시라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의 수도인 아르빌(Erbil)이다. 국군 자이툰부대가 주둔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르빌은 현재 백2십만명이 사는 방사형의 광활한 도시인데,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고원 같은 성채가 무려 8천년 역사의 고대 아르빌이며 그 자체로 박물관이다. ‘위에 있는 마을’라는 어원처럼 평원에서 30m 위에 성벽을 쌓고 약 3만평의 평지를 만들어 세워진 이 성곽도시는, 건물이야 세월 따라 변했겠지만 공간구조는 원형을 전하며 지금도 번잡한 일상을 보낸다.

직업을 핑계로 나는 세상의 숱한 도시들을 다녔다. 그 모두가 건축가인 내게 준 영향이 지대하지만 그 중에서도 모로코의 페즈(Fez)는 내가 가진 도시적 관념을 뒤집어 놓았던 곳이다. 789년에 세워져 천2백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 백만명 인구의 페즈는 현대도시의 구조에 익숙한 이들을 대단히 당혹스럽게 한다. 이 도시의 공중사진은 마당을 가진 작은 건물이 벌집처럼 밀집된 모습이다. 얼핏 무질서하게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대략 열 채 정도의 집들이 작은 군집단위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단위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동시설로 우물과 빵집 하나씩을 가운데에 두고 3,4층의 목조나 흙벽의 집들이 둘러싼 모습인데, 이 자체가 작은 도시이며 이 단위들이 증식하여 전체 도시를 이룬다. 마치 프랙탈 같은 구조여서, 몇개 단위가 없어지거나 덧대어져도 혹은 하나의 단위로만 있어도 그 모두가 페즈인 도시, 다시 말하면 부분이 전체와 같은 가치를 가진 도시이니 바로 발터 벤야민이 말한 민주주의의 도시가 이미 여기서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빌처럼 성곽으로 정한 한계도 없다. 필요에 따라 커지고 줄어드는 생물체 같으며 이를 유지하는 실핏줄 같은 길들이 작은 단위들 사이에 끝없이 흘러 모두를 연결한다. 대부분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낸 집들 안에 있는 각각의 마당 속으로 밝은 빛이 내려 앉는 풍경마저 그대로 역사적이다.

이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단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평등하다. 상업 공업 주거지역 같은 기능별 분류도 없고, 대로 중로 소로 같은 계급적 구분도, 중앙과 변두리라는 주종의 위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로 같은 길이 다소 넓어지면 광장이 되고 시장이 되며, 이 도시를 만든 왕의 무덤도 좁은 길가에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도 한 평범한 건물인 이 도시는, 효율적 지배와 기능적 구분, 배타적 조직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도시발전사와는 맥을 달리하며 이미 천2백년을 지속해왔다. 어떻게 이런 오랜 세월을 지속하여 왔을까?

온라인 건축매체인 ‘아키데일리(Archdaily)’가 지난 5월6일자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대를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도시의 원칙 12가지를 장단기과제로 나누어 열거하였다. 단기적 과제의 첫번째로 공공공간은 위기의 시대에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이며, 두번째는 도로를 포함한 공공공간을 긴밀히 연결하는 통합적 체계가 필요하고, 셋째 공공공간의 면적을 확충하라는 것, 넷째 공공공간의 기능에 융통성을 부여해야 하며, 다섯째 소외된 계층을 위한 필수적 서비스를 공공공간과 공공시설이 담당하게 해야 하고, 여섯째 특히 빈곤층의 일상적 삶의 작동을 공공공간을 통해 하라는 것이며, 일곱 번째는 공공공간은 장소와 사람을 연결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장기 과제로는, 다양한 모든 크기의 공공공간을 적재적소에 균등히 배분하여야 하며, 아홉번째로 자족적인 동네 즉 ‘15분거리의 컴팩트시티’를 이루라는 것, 또한 공공공간의 디자인과 관리운영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게 열번쨰이며, 이를 위한 사회적 관용을 키우는 게 또한 중요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도의 변화를 위해 지원정책을 꾸준히 펼치라는 것이다. 열두 가지 전부가 도시의 공공공간에 대한 언급이었다.

도시는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공동체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찾기 위해 공용의 장소에서 서로를 익히며 사회를 형성한다. 이웃은, 사회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지만 코로나라는 위기의 시대에서는 서로에게 마스크를 쓰게 하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잠재적 적이 된다. 이웃을 멀리하고 스스로를 밀실에 가두며 온라인으로 일상을 보내는 지금 우리의 삶이 계속된다면 우리사회의 붕괴는 시간문제일 게다. 모이고 만난다는 뜻의 사회는 서로 부딪히며 상대를 확인해야 하는 삶의 공동체이다. 이를 실현하는 공공공간의 확충과 연결 그리고 안정성 확보는 도시가 지속하기 위한 필수의 조건이며 정부의 우선적 의무라고 이 온라인 매체가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문득 페즈가 생각났다. 아키데일리의 언급은 페즈의 도시구조를 설명한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페즈가 오랜 세월을 지속한 까닭은, 서로에게 의존하며 연대하는 도시의 공간구조와 크고 작은 길들이 이루는 공공영역의 가변적이고 탄력적인 운용이며,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건축방식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녹색은 여기에 흔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 오래된 도시는 앞으로도 천년 이상 너끈히 지속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30년도 안된 아파트를 깨부수고 다시 지으며 친환경 운운하는 우리는 지속불가능한 공동체 속에서 뜨내기 같은 모습의 삶을 살고 있는 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5년 5월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라는 제목의 두터운 회칙을 반포하며 우리 후손이 물려 받는 지구의 생태회복을 위해 우리의 막된 삶을 바꿀 것을 촉구했다. 소위 친환경도시를 건설하느라 기존의 도시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보존하며 역사와 문화와 건축을 통합하여야 한다는 대목도 있었다. 기후변화와 오염된 물, 생물다양성감소, 삶의 질 저하와 사회의 붕괴, 세계적 불평등, 그러고도 반응하지 않는 우리들에 대해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위한 엄중한 성찰을 요구하며, 결국 우리가 짓고 있는 생태적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고 교황은 간곡히 권고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듣지 않았던 우리에게 결국 이 코로나시대가 닥친 것이다. 생태적 회개. 지속불가능한 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절체절명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