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도시 / 프랑스 국립도서관

대우건설 사보

1999. 11. 15

얼마 전 외신을 타고 들어 온 뉴스를 보며 문화에 대해 혼자 한참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에서 내년 새로운 세기를 맞아 미래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해 일년 내내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며 이를 범 국가적 사업으로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깊은 문화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저들의 발상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고 말았던 것이다. 그 부근에 우리는 이 밀레니움을 기념하기 위해, 어디서 불을 지펴 어디로 이동하고 보관한다든가 하는 단말마적이고 쇼 비즈니스적인 이벤트를 국가적으로 기획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며, 또 그렇거니 하고 있던 차였다. 문화적 사대주의라는 핀잔을 들을 만한 발언이지만 파리에서는 거지도 문화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말인 즉 그들에게는 문화라는 것이 어느 한 계층과 어디 한 부분의 특수한 일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퍼져있는 일상이라는 것일 게다. 문화가 어디 비교 우위를 따질만한 것인가. 그러나 문화에 관한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부심을 늘상 내세우는 것도 그들인데,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가끔 보여주는 문화적 실체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자부심을 수긍하게도 되어 있는 것이다.

부질없긴 해도 만약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가 누구인가를 뽑는 일이 있다면 나의 생각으로는 단연코 르 꼬르뷔제 라는 인물이 선두에 있다. 건축가는, 주로 혼자서 작업하는 다른 예술가와는 달리 건축주가 있어야 하며 협업하는 이가 있어야 하고 시공하는 이들이 있어야 비로서 그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일이다. 즉 건축가 개인이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하여도 그 사회가 파트론이 되어주지 않으면 비운의 직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꼬르뷔제라는 위대한 건축가는 그를 키운 프랑스라는 사회의 산물이라는 말도 된다. 초라한 우리의 처지를 비추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 88 서울 올림픽 때 프랑스 정부에서 프랑스 건축전을 서울에서 개최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몇 건축가와 그들의 건축 작품을 선전하기 위하여 그 전시회를 그들 정부가 주도하더니 그 이후 간헐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우리에게 그들의 건축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건축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상품이며 동시에 국가의 상징적 홍보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테랑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유난한 것이었다. 그가 소위 불륜으로 얻은 자식 이야기도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보였고, 병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그에게 세계가 연민의 정을 쏟았다. 지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노대통령의 삶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던 것이다. 본시 문학도였던 그가 우파 정권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그랑 프로제 ( Grand Project )’ 라는 대역사를 시작한다. 세계에서 문화적 우위를 입증하려는 듯,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통한 파리의 문화적 개조작업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라 데빵스에 ‘신 개선문 ( Grand Arche )’ 을 세워 파리의 중심축을 늘였으며, 루브르박물관의 중정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워 루브르 궁전을 훼손치 않고는 불가능해보였던 박물관 증축을 이루었고, 라 빌레트의 소시장을 공원으로 바꾸며 새로운 건축개념을 정립하게 하고 이 외에도 비스티유 극장 등을 비롯해 현대건축사에 찬연히 빛날 기념비들을 여럿 건립하게 한 것이다. 물론 이들을 이룬 건축가들의 놀라운 역량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일이었으나 문화에의 확실한 신념을 가진 미테랑 대통령의 혜안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랑 프로제의 일환으로 건립된 ‘프랑스국립도서관 (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을 나는 가장 성격이 분명한 ‘미테랑적 건축’으로 지칭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국립도서관을 파리 사람들은 ‘미테랑 도서관’으로도 부른다. 이 도서관은 1989년 국제설계경기를 통해 나타났다. 그 설계경기의 심사위원 중에서 지난 1971년 약관 34세의 나이로 퐁피두센터 국제설계경기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렌조 피아노가 중요한 위치에서 심사를 맡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세계 건축계의 거장이었다. 그를 비롯한 심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두 개의 안을 뽑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그 선택을 맡긴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 일 일까. 더구나 두 개의 안은 서로 비슷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안이었다. 한 안은 대단히 절제적 모습을 가졌고 다른 안은 상당히 표현적 형태를 띄고 있었으니 이것은 어떻게 보면 서로 대립되는 듯한 건축이었던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절제된 모습을 가진 설계안을 택한다. 이것은 그가 지적으로 얼마나 풍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프랑스는 도미니크 페로( Dominique Perrault )라는 36세에 불과한 약관의 건축가를 국민적 영웅으로 가지게 된다.

도미니크 페로. 그는 이 도서관의 1등 당선 이전에 파리 교외에 전자공학대학과 한 자그마한 호텔을 설계하여 재능을 보인 적이 있지만 불과 3,4명의 직원을 가진 작은 설계사무소를 겨우 꾸려나가는 무명의 건축가였다. 그가 프랑스의 지식의 보물 창고인 국립도서관의 건축가로 발표되고 그의 설계안이 노출되었을때 프랑스는 경악하고 말았다. 마치71년의 퐁피두 센터의 설계안이 공표되자 프랑스 사회에 일었던 뜨거운 논쟁을 다시 연상하게 했다. 그러나 프랑스 인들은 이미 그러한 논쟁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일 뿐 이 야심차고 기품 있는 설계안을 뒤집을 의도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그러한 논쟁에 익숙한 그들은 이 새로운 도서관의 실현을 못내 기다려왔으며, 드디어 지난 1995년, 이 도서관은 새로운 건축의 이념을 세계에 내보이며 세느 강변에 하나의 문화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도서관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책의 보관과 열람에 대한 기능이며 지식의 전당이라는 상징일 것이다. 이 보관이라는 기능으로 인해 책은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 소위 수장고라 이름하는 어두운 곳에 있게 되고 열람의 행위는 지상에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며 건축의 형태로서 지식의 전당은 권위를 연상케 하고 이어 육중하고 우람한 골격을 갖는 건물로 되어야 도서관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모든 기존 생각의 반대편에 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서게 된 것이다.

이 도서관은 세느강을 이웃하고 있는 철도의 기지창으로 쓰이던 2만평이 넘는 넓은 땅을 부지로 한다. 도미니크 페로는 세느강 쪽으로 다소 경사져 있는 땅을 하나의 면으로 만들고자 세느강변의 면을 들어 올려 기단부를 형성하고 그 가운데에 200m길이와 60m폭을 갖는 직사각형의 면적을 파서 기단부에서 21m를 내려간 바닥에 정원을 만든다. 그리고 이 가운데 직사각형의 둘레 네 귀퉁이의 가장자리를 싸는 기역자 평면을 가진 네 개의 타워를 80m 높이로 세운다. 이 타워는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으며 그 안은 수장고이다. 열람실은 기단부 아래에 있으며 뚫려진 정원을 통하여 빛을 받는다. 기단부는 나무로 되어 있으며 나무의 기단부 위에 놓여진 시설은 유리와 철제 같은 대단히 날카로운 재질로 되어 있다. 심지어 나무들도 철제의 망으로 된 박스 속에 갇혀져 있다.
이 파리국립도서관은 많은 역설을 가진 건축이다. 건축가는 이 건축을 일반적으로 선입견 되는 육중하고 막혀있는 볼륨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가 그린 것은 무엇인가. 그는 오히려 도시조직 속에 스며든 공백을 그렸으며 건물은 그 공백을 한정하는 요소일 뿐이다. 그는 기단을 만들고 그 속을 비움으로써 그러한 공백이 서는 방법을 납득시켰고 특별한 장소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즉 이 공백의 네 귀퉁이에 선 건물 사이에서 함축된 의미를 갖는 이 공간은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남게 된다. 이 명료성은 탁월하여 이 공간을 이미 고귀한 정신으로 느끼게 하며 나아가 지식의 구체적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기단부에서 지면 밑으로 내려간 선큰 가든은 닫쳐있고 접근이 불가능하다. 이는 의미가 가득 찬 문화의 신비한 중심으로서 그 성격을 더욱 뚜렷이 한다.
아프리카 산의 잿빛 나무로 덮인 기단부는 무려 300m가 넘는 목재 계단을 디디고 올라가야 한다. 이 목재를 밟는 순간 책을 만드는 재료를 디디는 것이며 그 발걸음은 콘크리트의 계단을 밟는 것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심지어는 방문객의 마음을 경건하게 까지 만든다. 기단부에 오르면 이미 도시의 일상적인 삶에서는 떠나 있다. 광활한 평원에 다다랐으며 이 평원은 마치 쟈코메티가 샤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위해 꾸민 삭막한 무대처럼 팽팽한 긴장에 싸여 있다. 이 긴장된 평면 위에 네 개의 유리타워는 투명하게 빛난다. 투명함 속에 비치는 따뜻한 목재의 판넬은 시시 각각 열리고 닫혀 수시로 변하는 천의 얼굴을 속에 갖고 있으며 그 속에 보이는 책은 마치 지식이 얼마나 보석 같이 귀한 것인지 아름답게 비추인다.
이 기단부 중앙에 파인 공허부는 마치 태고에 만들어진 자연의 분화구이며 그 속에 심어진 나무는 자연의 불가침적 가치를 상기시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제 일상에서 완벽하게 이탈하여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떨어지는 것이다. 따뜻한 목재가 가득 찬 열람실은 새로운 세상이다.
이 걸출한 건축은 무엇보다도 네 개의 타워가 만든 공허부에 그 가치가 있다. 이 공허부는 하늘과 구름을 담기도 하지만 파리의 도시를 그 속에 껴안는다. 우리로 하여금 파리를 마치 지식의 도시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 파리국립도서관은 일개 건축이 아니라 바로 ‘지식의 도시’인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이 도서관의 준공을 기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그의 디자인은 대칭 속에서 명료하며 그 선들은 절제되어 있고 그 속의 공간들은 참으로 기능적입니다. 마치 침묵과 평화의 요구인 것처럼 이 건축은 지면 속으로 파고 들었으며 네 개의 타워는 이 도시의 심장부인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땅과 하늘 사이에 생겨난 이 도서관의 산책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현대도시의 새로운 거처인 이 넓은 공공의 공간에서 우리는 만나고 섞이게 되었습니다. 페로의 이 작업은 일개 건축이 아니라 미래를 예시하는 하나의 도시계획인 것입니다. 바로 그는 인류의 지식에 대한 굶주림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에 대한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것입니다.”

어떤 건축 평론가가 진실에 차고 섬세한 감성을 통한 이런 관찰의 언설을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평가이며 지적인 묘사 아닌가.
프랑수와 미테랑과 도미니크 페로를 가진 지식의 도시, 파리 국립도서관. 너무도 부러운 문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