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건축-르 토로네 수도원과 라 투레트 수도원

중앙일보 사회

2004. 3. 02

지난 20세기 건축사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1887-1965)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이의를 다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초 세기말의 위기를 극복한 모더니즘의 정 중심에 섰던 그는 건축가라기 보다는 시대를 견인하던 예언적 지식인이요 전인적 예술가였다. 그가 떠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도시와 건축에 대한 그의 이론은 현대의 신도시들이 만들어지는 기반이고 그의 이름은 건축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다.
그가 남긴 주옥 같은 건축 중에서 라 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은 단연코 걸작 중의 걸작이다. 구릉의 땅에 세워진 콘크리트의 볼륨이 갖는 시적 언어와 본당의 텅 빈 공간에 충만한 침묵과 빛의 아름다움, 경사진 길과 리드미컬한 빛의 행렬, 검박하기 이를 데 없는 수도사의 방, 옥상의 경이로운 세계 등 이 건축은 코르뷔제의 지적 완성과 영적 충만 그 자체이며 모든 건축가들에게 현대건축의 성서적 존재이다.
대학시절 그의 신자였던 나는 온갖 건축 치수를 다 외울 정도로 라 투레트 수도원을 학습하였으며 마음 속에 그 공간을 자신 있게 재현하곤 하였다. 나는 이 건축을 지금껏 다섯 번 순례하였는데 1999년의 두 번째 방문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

그 때는 일년 예정으로 런던에서 체류하고 있을 때였다. 혼자 여행을 하다가 리용에서 기차를 타고 이 수도원이 있는 아르브렐르에 도착하였지만 그 역에서 산 위에 있는 수도원까지 갈 방법이 여의치 않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떤 노신사가 내게 다가와서 수도원에 가느냐를 묻고는 자기 차에 동승할 것을 권하였다. 작은 행운이라고 여기고 얼씨구나 하고 차에 올라타 보니 그는 라 투레트 수도원의 원장 안톤 리온(Antoine Lion)신부이다. 리용 역에서부터 내 행동거지를 보고 수도원을 방문하는 건축가로 짐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 행운이 터지고 있었다. 예약하지 않은 숙소까지 마련해 주는 것은 물론, 나와 코르뷔제에 대한 말문이 트인 직 후 그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수도원 지하의 祭室과 옥상정원까지 몸소 자물쇠를 열어가며 안내해 주는 것 아닌가. 그토록 오랫동안 직접 보기를 원했던 진기한 보물들을 만진 느낌-황홀함이었다.
그러나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식사를 마친 후 그의 서재에서 그가 권하는 칼바도스를 마시며 이 걸작과 거장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다가, 코르뷔제에게 설계를 맡겼던 그 당시 도미니크파 수도원장이던 쿠드리에(Couturier)신부에 이야기가 미쳤다. 그 신부가 코르뷔제에게 가보기를 권한 르 토로네(Le Thoronet)수도원으로 우리 이야기는 이어졌고 리온 원장은 1957년에 출간된 책 한 권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그 책은 ‘진실의 건축’이라는 이름이 붙은 르 토로네 수도원의 사진집이었다. 새롭게 짓는 수도원에 옛 수도원의 정신을 나타내어 줄 것을 원한 쿠드리에 신부의 요청을 따라 그 곳을 가 본 코르뷔제가 엄청난 감동을 받고 파리의 사진가에게 그 공간을 기록하게 한 책이었는데, 그 책에 실린 흑백의 사진을 조심스럽게 넘겨보면서 밀려오는 감동으로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책 속에 짙은 빛과 깊은 그림자가 재현한 그 수도원의 공간은 그야말로 침묵의 신비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책의 서문을 코르뷔제가 썼는데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의 사진들은 진실에 대한 증언이다.’……진실, 무엇에 대한 진실인가?
그 책을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을 본 원장은 이미 절판된 그 책을 내게 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으나, 나는 그날 밤 그 수도원에 대한 상상으로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귀국한 이후 몇 건축가들에게 이 르 토로네 수도원을 같이 가 볼 것을 강권하여 지난 2001년 비로소 처음 방문하게 된다.

수도원의 종류와 숫자는 신도 모른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로 오늘날 그 분파는 수 없이 많다. 서기 3세기 이집트의 수도원이 효시라고는 하나 수도회가 본격적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이탈리아의 수도사 베네딕트의 금욕적 가르침에 따라 규칙을 만들면서이다. 그러나 이 수도원의 세력이 커지자 그 운영이 방만하게 되면서 일부 수도원은 사치에 빠진다. 이에 영성활동의 진정성을 찾는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11세기 초 교회개혁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 철저한 금욕적 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시토(Citaux)회가 결성되게 된다.
베네딕트 규칙을 철저히 지킨 시토회의 수도사들은 재물과 육체와 정신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육체노동과 경건한 독서, 기도와 찬송만을 그들의 일상으로 삼는다. 그러한 수도사들에게 수도원을 짓는 일은 그 속에서 행하는 명상과 관조와 같은 영성 활동 그 자체였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신의 형상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다. 따라서 수도원 건축은 수도사들의 신념이 그대로 구현된 작은 도시일 수 밖에 없다.

르 토로네 수도원은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에 상수리나무가 울창한 계곡 속 물가를 부지로 삼아 1176년에 지어졌다. 전체가 동일한 수준의 건축기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꺼번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며 증축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완벽하다.
본당의 출입은 정면 한 가운데가 아니라 한 쪽 켠에 있는 아주 소박한 문을 통해 이뤄진다. 가만히 몸을 숙이고 들어가 갑작스런 어두움에 적응하기 위해 다소곳이 서 있으면, 아 지극히 아름다운 빛의 다발이 고요하게 공간을 밝히고 있다. 바닥 벽 기둥 천정 모두가 석재로 되어 있는데 그 감동적인 빛은 석재의 거친 표면을 긁기도 하고 모서리의 각을 선명히 드러내기도 하며 둥근 천정을 부드럽게 감싸기도 한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고요함이 그 위를 덮는다.
석재의 쓰임은 지극히 검박하다. 장식도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석재끼리의 맞춤도 대단히 정교하면서 단순하다. 어디 하나 모자람도 없고 더함도 없다.
본당 옆 벽의 작은 문을 통해 내어다 보면 중정을 감싸고 도는 회랑이 있다. 아치형의 창틀을 통해 바닥의 돌판에 새겨진 빛과 그림자의 행렬이 우리를 극도로 긴장하게 한다. 수도사들은 여기를 돌며 거추장스러운 삶의 찌꺼기를 씻고 또 씻었을 게다. 그들은 여기서 洗足禮를 거행하기도 하여 자기를 낮추며 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리라.
이 회랑에 붙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돌의 한 부분을 정교히 도려내어 흘러 들어오게 한 빛이 이 속세인의 가슴으로까지 들어오는 듯하다. 애잔하기 그지 없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성서에 기록된 바처럼 마치 돌들이 일어나 찬양한 듯 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나에게 오랫동안 교과서가 된 라 투레트 수도원의 모든 근원이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경사진 통로, 음악처럼 흐르는 열주와 황홀한 빛 그리고 긴장과 그 고요함까지 그 눈부신 창조가 이 르 토로네 수도원의 건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르 코르뷔제를 오히려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 천재적 건축가가 취한 고전에 대한 경외와 진실에 대한 겸손이, 르 토로네를 그의 건축언어로 다시 기술하여 라 투레트를 만들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이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며 그 책의 서문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는 진실함과 고요함과 강인함의 이 건축을 크게 외치고 있다. 어떤 것도 더해질 수 없다. 이 미숙한 콘크리트의 시대에 처한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엄청난 조우를 기뻐하고 축복하며 반겨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