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이름, 인문정신의 출발점

경향신문 '오피니언'

2015. 1. 01

내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의 이름은 ‘이로재(履露齋)’이다. 뜻으로는 ‘이슬을 밝는 집’인데 ‘소학(小學)’에 연유한다. 어느 옛날 노부를 모시고 사는 한 선비가 부친이 아침에 일어나시기 전에 겉옷을 걸치고 부친 처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시면 따뜻해진 겉옷을 건네드렸다는 이야기다. 새벽녘에 이슬 앉은 마당을 밟아야 하는 집 ‘이로재’를 의역하면, 효성이 지극한 가난한 선비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90년대 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교수가 내게 집 설계를 의뢰했을 때는 그 밀리언셀러의 책이 나오기 전이어서 학자 신분에 집 지을 돈이 넉넉할 수 없었다. 내게 준 설계비도 충분치 않다고 여겼는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2백년된 현판을 답례로 주었는데, 내가 평소 탐을 내던 터라 두말 않고 들고 와서 그 전까지 쓰던 사무실 이름을 그 현판의 ‘이로재’로 바꾸었다. 새벽에 이슬을 밟는 이가 도둑이나 설계사무소 직원 밖에 없다는 농도 동료들로부터 듣기도 했지만, 이 이름을 얻은 후부터 은근한 변화가 사무실에 일기 시작한 것을 안다. 우선 이 이름을 걸고 사무소를 운영하는 내 사유의 방향이 그 당시 내 건축의 주제로 걸었던 ‘빈자의 미학’과 함께 절제와 검박으로 향하고, ‘이로재’의 뜻을 듣고 난 건축주들의 태도도 자못 진중해졌다.
유교수는 내가 설계한 집의 이름을 도덕경의 대교약졸(大巧若拙)에서 연유하여 ‘수졸당(守拙堂)’이라 했다. 큰 기교는 서툰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내가 ‘빈자의 미학’이라는 화두를 내걸며 처음 설계한 건축이라 내가 얼만큼 와있는지 알기 위해서 늘 기억해야 하는 이 집은, 우리 문화에 대해 근본적 성찰을 부르며 큰 바람을 일으킨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산실이 되었다. 건축개념을 대변한 집 이름이 거주인에게 그런 삶의 태도를 암묵적으로 지시하지 않았을까?
비슷한 시기에 선배건축가 민현식은 사무실 이름을 기오헌(寄傲軒)이라 지었다. 기오헌은 19세기 초 22세로 생애를 마친 효명세자가 사색과 독서를 위해 창덕궁의 후원에 지은 불과 4칸짜리 작은 집이다. 영민한 그가 번잡한 궁궐을 멀리하고 군주의 기품을 스스로를 닦은 이 집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땄다.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남창에 기대어 마음을 다잡아 보니 좁은 방 안일망정 편안함을 알았노라)”이니 기오헌은, 비록 작은 집이지만 선비의 기품을 잃지 않고 한껏 오기를 부리는 곳이다. 실제로 민현식선배가 그렇게 산다.
조선의 인물 중에서 나를 유독 끄는 이가 정도전인데, 한양도성의 설계자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도성 안 전각들의 이름들을 다 지어낸 것에 경탄한다. 경복궁, 근정전, 강녕전, 사정전 등 말하자면 마치 죽은 사물에 혼령을 불어넣어 생명체로 만들 듯, 이름으로 그 전각들을 한갓 부동산이 아니라 의미체로 변하게 한 것이다. ‘인간과 말’을 쓴 영성적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하나의 말을 들으면 하나의 빛을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말로 인하여 불멸이 된다.” 이름을 갖는 것은 그로 인한 세계를 갖는 것이며 그 이름이 존재하거나 기억되는 한 그 세계는 불멸이라는 것, 그래서 이름은 존재의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 그래서 그런가, 집이나 이름은 같이 ‘짓다’라는 단어를 쓴다.
물론 정도전 뿐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기가 거처하는 곳이면 어디든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이 목적하는 바대로 자신의 삶을 몰았다. 회재 이언적의 집 ‘독락당(獨樂堂), 마음이 홀로 서야 이(理)가 생긴다는 성리학자 회재의 삶을 이보다 더 좋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게다. 벼슬을 마친 선비들이 낙향하여 마련한 거처의 이름들 중에 ‘만취(晩翠)라는 글자가 꽤 많이 등장하는데, 늦게까지 푸르겠다는 뜻이니 늙어서도 자기의 뜻을 지킬 것을 스스로 맹세하는 것이다. 혹은, 이제는 세속을 멀리해 스스로 삼가고 자연을 벗삼아 마음을 곧게 닦으며 맑은 날의 바람처럼, 비 갠 뒤 떠 오른 달처럼 살겠다는 ‘광풍각(光風閣)’ ‘’제월당(霽月堂)에 이르면, 비록 집은 초라해도 마음은 더 없이 크다. 그야말로 집은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인문정신 그 자체였으니 당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삶의 방향을 다듬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자기선언이었던 것이다.

근데 요즘의 우리들 집 이름은 어떤가? 한동안은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 이름으로 된 집단적 당호로 자조하더니, 뒤를 이어 졸부취향을 부추기는 맨션이니 빌라가 그 영어의 본래 뜻과 관계없이 붙어 집을 희화화 하였다. 최근에는 영어에도 없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몇 동 몇 호라는 숫자의 집 이름에 무슨 인문정신이며 정체성이 찾아질 것인가? 거주방식이 분별 없으니 우리네 삶도 이토록 척박한 것 아닐까?
지금이라고 당호를 가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나는 내가 설계한 집에 이름은 붙여주며 건축의 성격을 한 단어로 압축하여 설명하곤 한다. 소박한 삶을 사는 부부를 위한 백색의 주택을 ‘수백당(守白堂)’이라 지었으며, 교단에 서는 분의 집은 어눌한 게 달변보다 낫다는 뜻으로 ‘수눌당(守訥堂)’이라 했다. 울창한 억새풀 숲 옆에 지은 간결한 집은 ‘노헌(蘆軒)’이라고 했고, 스스로 드러나지 않기를 원하는 어떤 분의 집은 집 자체도 모양이 드러나지 않게 지었지만 이름도 ‘모헌(某軒)’으로 했다. 어떤 경우는 건축주와 같이 짓기도 한다. 최근 판교에 지은 집의 이름은 건축주가 ‘고(古)’를 먼저 정하고 내가 덧붙여 ‘청고당(晴古堂)’이라고 했다. 오래된 것에 시간이 베어 맑은 윤기를 가지게 된 집이라는 뜻이다.

어떠신가? 각자 자기의 집 이름을 짓는 게…… 오늘 새해 첫날. 비록 아파트에 살아도, 단칸방이라고 해도, 혹은 찌든 월셋방에 산다 해도 각자의 존재방식이며 세계를 향한 출발점이 거처이니 그 희망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름을 스스로 짓고, 그 이름의 뜻대로 삶을 다독거리며 한 해를 출발하는 게……
언어가 빛이라고 했으며 이름이 존재라고 하였다. 간곡히 바라건대, 올 한해, 지은 이름대로 미생일망정 우리 모두의 존재가 빛을 발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