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불태우는 자는 결국 인간도 불태우게 된다

중앙일보 사회

2011. 11. 17

여행은 혼자 가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경험으로 보면, 둘이 가면 반만 여행하는 셈이 되고, 셋이 가면 하나는 왕따되기 쉽고, 넷은 편이 갈라진다. 다섯이 가면 식탁에 안기가 불편하고 숙박도 난감하며 차를 빌리거나 탈 때도 부담된다. 몇 사람이 같이 가야 한다면 여섯이 제일 좋다. 9인승 밴을 렌트하면 짐도 넉넉히 실을 수도 있고 방 배정이나 식탁사용도 편하다. 무엇보다 여섯은 토론이 가능한 숫자여서 여행 도중에 좋은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진다. 그 보다 많으면 단체훈련이지 여행이 아니다.
지중해변이나 동남아 관광지 같은 시끌벅적한 곳이 아닌 다음에야 단독의 여행이 언제나 낫다. 특히 역사적 도시나 유서 깊은 마을 같은 곳은 혼자여도 안전에 문제가 없고 혼자됨을 눈 여겨 보는 이도 없으니 고독을 만끽할 수 있다. 바쁜 일상에 쫓겨 가질 수 없었던 사유와 내적 성찰이 비로소 깊고 풍부하게 이루어진다. 베를린이 그런 도시다.

베를린은 1237년에야 역사책에 처음 등장할 정도로 유럽에서는 대단히 젊은 도시다.도시는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에 의해서도 세워지지만, 이념이나 사상 혹은 자본이나 문화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한 가지만으로도 도시는 특성을 갖는데, 베를린은 이 모두를 다 가지고 있는데다 지금도 변하고 있는 도시이다. 카알 쉬플러라는 오스트리아의 문화비평가가 이런 베를린을 가리켜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도시라고 정의한 게 20세기 초엽이었는데, 그 정의는 그가 선언한 이후부터 더욱 유효했다. 짧은 역사 속에 온갖 질곡을 가졌음에도, 20세기의 베를린은 광기의 세계사를 특별히 압축한 도시였던 것이다.
‘타임아웃’에서 펴낸 베를린 가이드북에는 이 도시를 ‘명상과 대화와 교환의 메트로폴리스’라고 적고 있다. 만신창이에서 일어서서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는 베를린이 이제는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념의 장소를 곳곳에 만들며 우리를 성찰하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통독 이후 베를린은 공산주의 학정에 대한 기억을 포함하며 인간의 존엄을 해친 모든 비윤리적이고 반문화적 행위에 대한 기억을 다시 대대적으로 도시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베를린을 동서로 관통하는 중심 도로인 운터덴린덴 주변에는 중요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 도로의 동쪽 끝에 19세기 신고전주의 건축의 거장 프리드리히 슁켈이 만든 ‘노이에바흐’라는 작은 건축이 있는데 원래는 프러시아 황제의 근위대 초소로 1816년에 지은 것이다. 여러 곡절을 겪은 이 건축을, 통일된 베를린은 1993년 ‘전쟁과 학정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 중앙기념관’이란 이름으로 재단장하여 개관했다. 우리로 치면 전쟁기념관일 게다. 신고전주의 건축의 보물이라고 해봐야, 볼 것 많아 바쁜 내 관심의 밖인데, 1999년2월의 겨울 이곳을 지나치려다 흘깃 이 건축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공기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아무 장식도 없이 완벽히 비운 내부 공간의 한 복판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몸부림친 캐테 콜비츠의 조각이 있었다. 죽은 병사를 안은 어머니, 이 처절한 피에타는 뚫려진 천정을 통해 내려오는 베를린의 찬 공기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공간의 크기는 불과 70여 평 남짓인데 내려 앉은 고요의 크기는 한이 없었다.
사실은 길 건너 베벨광장의 기념비를 보러 가는 도중이었다. 충격을 가라 앉힐 수 없었지만 시간이 어둑하여 길을 건넜다. 들은 바에 의하면 오페라하우스 옆의 광장에 홀로코스트 기념탑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발견할 수 없었다. 광장은 그냥 비어 있었다. 그러다가 광장 한 복판에서 희미한 빛이 낮게 깔린 안개를 희뿌리며 솟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그랬더니, 아…광장의 바닥, 1미터 사방의 사각을 덮은 유리 속에 백색의 빈 서가가 들어서 있는 것이었다. 이곳이 바로 1933년 괴벨스의 지시를 따른 소년나치들이 토마스 만이나 칼 맑스 등 유태인 학자들이 쓴 책 2만권을 불태운 현장이었고 그 야만을 기억하는 기념비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이 철판 위에 새겨져 뉘여 있었다. “책을 불태우는 자는, 결국 인간도 불태우게 된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땅 속 서가의 불빛이 더욱 솟아 올랐다. 여렸지만 충분히 주변을 지배했다. 광장의 추위는 속 살까지 후벼 파는데, 찬 기운에 씻긴 정신은 더욱 영롱하였다.

건축을 공부한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통독 전 1987년에 만든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이 도시의 풍경은 시간을 정지시킨 흑백이다. 그 영화의 자막에는 이런 시가 나온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베를린을 여럿이 여행하는 것, 그것은 야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