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도시 페즈-절치할 것도 부심할 것도 없는 곳

중앙일보 사회

2011. 9. 17

절치부심(切齒腐心.).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지난 9월2일 개막한 직후 얻은 결과다. 앞니가 여섯 개 부러지고, 속도 망가졌다. 의사 말로는 이를 악무는 습관이 빚은 결과며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대장증상이라 했다. 낭패였다. 사실은 개막 후에, 지난 1년 반의 격전에 입은 상처를 털기 위해 여행을 떠나려 했는데 상처가 너무 깊어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페즈로 가고 싶었다. 페즈…
나치의 추적을 견디다 못해 피레네 산맥의 작은 마을 포르트부에서 자살한 발터벤야민은 특별히 도시에 대해 많은 사유의 기록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제임스조이스가 쓴 율리시즈 읽기를 특별히 좋아했는데, 이유인 즉, 책 어디에서 읽기를 시작해도 전체 줄거리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바로 현대도시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그는, 어떤 도시의 한 장소에 있을 때 그 모퉁이를 파악하는 것 만으로도 그 전체를 알 수 있게 하는 곳이 좋은 도시라고 하였다. 무슨 소린가.
부분만으로 도시전체를 알 수 있다면 그 부분 자체가 도시의 모든 성격을 다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 도시의 모든 부분들이 다 독립적이어야 하고 서로 대등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능적 구분이 확연한 현대의 도시-중심과 변두리의 차이가 확실하고, 주거, 상업, 공업지역 등의 지역별 용도가 뚜렷하여 서로에게 종속되는 그런 도시에서는 난망한 일이다. 물론 봉건시대에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단일 중심의 도시에서도 부분들의 독립이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벤야민이 말한 그런 도시가 어디에 있을까. 그게 바로 모로코의 페즈다.
이 도시는 서기 789년에 세워져서 오늘날까지 여전히 기능하고 있으니 놀랍게도 1,2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859년 이곳에 세워진 알카라윈대학이라면 이 도시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두말 않고 천년도시다. 작은 도시도 아니다. 오늘날도 백만 명이 사는 모로코 제2의 도시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교육과 교역의 중심지다. 그럼에도 역사도시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그 긴 세월 동안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벤야민의 언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페즈의 항공사진을 보면, 작은 마당을 중심에 둔 ㄱ자, ㅁ자 집들이 벌집처럼 붙어있다. 서양도시에 흔히 있게 마련인 중심축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으며, 중앙광장이나 중앙공원, 중앙로도 없다. 사실 중앙이라는 글자를 가진 도시구조는 봉건시대의 유물이다. 차량이 위주가 아니니 곧장 가는 길은 하나도 없고 그 폭도 변화무쌍하다. 실핏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들은 때로는 좁고 때로는 어둡지만 어떤 곳은 불현듯 넓고 밝아 노천 시장으로도 쓰이고 더러는 아이들의 놀이터나 마당으로 혹은 그 공동체의 집회장으로 쓰인다. 길은 그들에게 그냥 통행의 수단만이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적 삶의 기억을 만들며 서로를 엮는 귀중한 공공영역이다.
이들의 종교는 알라 밑에 모두가 평등함을 믿는 이슬람이다. 그러니 중심과 변두리의 개념이 없으며 계급이나 특별함에 대한 의식이 없다.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 등 장소의 등급을 나타내는 구분도 없고, 기념비적 랜드마크도 없어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모여 있다. 가만히 보면, 대개 열 채 남짓한 집들이 빵집이나 우물 같은 최소한의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하나의 작은 단위를 이루고 있는데 이 단위가 서로 조금씩 다른 크기와 형태로 반복되면서 전체도시를 조직한다. 즉 수 많은 작은 도시가 모여서 하나의 도시가 되어 있는 게 바로 페즈다. 공동체 단위들과 각 집들이 서로에 대해 독립되어 있어, 부분이 전체와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고 개체와 전부가 다 동일하다. 소위 프랙털구조로 이해하면 된다. 이는 단일 중심의 봉건적 도시와 대척점에 있는 구조이니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며, 바로 발터벤야민이 그렸던 도시라는 것이다. 모든 부분이 중심인 까닭에 한 부분이 무너진들 혹은 덧댄들 그래도 존속하는 도시, 이것이 1,200년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온 페즈의 비결이었다. 지속 가능한 삶. 우리 지자체장들이 사막 위에 급조된 두바이를 벤치마킹 하느라 소란 떨지 말고, 이런 천년도시에서 그 비밀을 배워야 한다.
십 수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이곳을 또 가고자 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이라고 변한 게 하나도 없을 게 분명하다. 소란한 우리 땅에서 이 악물고 살아야 한 내가 오히려 변했을 터이니 변함없을 페즈에 투영된 내 자신이 궁금하였던 것이다. 여행이란, 대상이 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보는 것 아닌가.
여기를 처음 찾아가면 안내자 없이는 길을 잃게 마련이다. 길을 잃는 게 좋다. 길 못 찾아 두리번거려도 위협하는 차량 없고 미로 속을 헤매어도 풍경은 이미 낯익다. 오히려, 하루를 버리고 느긋이 걷노라면 이방인은 어느새 거리 풍경의 일부가 되고 그로써 평화롭다. 절치할 일도 부심할 일도 여기서는 없을 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