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조선일보

2005. 8. 20

나는 수년 전 이 조선일보의 지면을 빌려 ‘내가 서울시장이라면’(2000.8.14, 일사일언) 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하면서 청계천의 복원을 주장한 적이 있다. 내 바람이 통했을까, 이명박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이를 공약하더니-그래서 나는 그를 적극 지지했다- 그 특유의 추진력으로 서울도심에 짙은 그림자를 내리던 고가도로를 걷어내고 드디어 청계천 물길을 여는 대역사를 성취하고 말았다. 고도성장을 위한 개발시대를 치닫던 우리에게 이는 획기적 전환점인 게 분명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이 일을 보는 나는, 그렇지만 우울하다.

 

내가 그 글을 통해 그렸던 것은 단순한 청계천의 복원이 아니라 고도(Old City)의 회복이었다. 올드시티의 흔적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외국의 역사도시와는 달리, 서울은 600년 역사를 가졌으면서 그 흔적을 찾자면 굳이 고궁 같은 곳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전란으로 대부분의 옛 건물들이 파괴된 지경에서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흔적은 비단 건축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길이 존재하며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불규칙한 필지와 그 삶의 기억을 가진 땅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이다.

서울은 평탄지에 세운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과는 달리 산지에 세워진 도시이다. 그들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기념비적 인공건조물들을 만들 수 밖에 없지만 서울의 도시 이미지는 산세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어서 건축물은 그 자연의 형상에 어울리도록 고만고만하게 지으면 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서울의 도시풍경은 산을 배경으로 작은 조직들이 모여서 이루는 집합적 구조에 그 아름다움이 있다. 이는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한 방법이어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역사도시의 품위를 갖추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수려한 산세의 선을 뭉개놓는 난데없는 아파트군락이며 유서 깊은 종로에 솟은 분별없는 고층건물들, 재개발사업이 구세주인양 오래된 주거지와 골목길들을 지우고 상투적 신작로를 만드는 경박한 모습에서 오히려 서울은 영원히 급조한 도시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청계천 복원은 이 올드시티의 회복에 중요한 첫 단계로 판단했던 것이다. 청계천을 복원하면 여기로 흘러 들어오는 물길들을 정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온갖 지천을 다시 복원하거나 대대적 수질 정화사업을 벌여야 한다. 이 과정은 서울의 원래 자연지형을 회복하는 일일 뿐 아니라 개발주의 속에 묻혔던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리는 일이다. 교통은 북새통이 될 것이라 걱정하겠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이며, 그로 인해 도시의 공기가 좋아지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사대문 안은, 작은 물길들 옆의 가로변을 정돈하고 여러 곳에 남아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중심으로 문화거점을 재편하고 산과 산을 잇고 보행로를 넓히고 자전거도로를 이으면 고도의 면목을 갖추게 되는 일이었다. 장구한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그런 황홀한 그림이 눈 앞에 보이는 한, 그렇게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즐거운 법이며 그 과정에서 논의되는 수 많은 도시문화에 관한 담론 또한 의미 있는 부산물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이 시작되면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청계천에 한강에서 역류시킨 물을 흐르게 하여 이를 다시 보낸다는 것, 이는 자연을 거스르는 일 아닌가. 이는 청계천이 아니었다. 거대한 인공수조이며 테마개천일 뿐인데… 나로서는 그 발상의 기묘함에 탄복할 뿐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언제 느긋하게 기초부터 해 왔는가. 우선 결과를 보여주고 다시 기초를 닦는 것도 굳이 나쁜 방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게 자위했다. 그 까닭은 그래도 하나는 믿는 게 있었기 때문인데, 청계천 복원이라는 일이 지난 시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개발지상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역류에 대한 발상을 핀잔하는 이들에게도 이는 어차피 도심하천이니 인공적 수법이 동원되지 않을 수 없다고 두둔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외국처럼, 작지만 아름다운 갤러리나 카페들이 천변에 즐비해지는 풍경을 꿈꾸었을 게다.

 

그러나 서울시는 내 소망을 여지없이 부수어 놓았다. 설마 했던 청계천변 거대 개발사업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역시 철 없음을 알아야 했다. 그들은 줄줄이 고밀도 고층의 개발계획을 만들어 옹기종기 모인 인근 집들을 죄다 뭉개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아예 올드시티니 고도니 하는 개념이 없었다. 그저 강남에 반대되는 강북이 있을 뿐이며 강북은 낙후된 지역이어서 강남의 번쩍거리는 모습-이 급조한 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아 지가를 올리는 일이 역사도시 강북을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이들이었다. 청계천 복원은 개발지상주의의 또 다른 유토피아를 위한 단초였던 것이다.

청계천을 치장하면서 이는 더욱 확실해졌다. 그 완성된 모양들을 보라. 어떻게 보면 도시하부구조일 뿐인 그래서 우리 도시민의 삶이 돋보이도록 그냥 단순하고 절제된 배경으로 존재해야 할 도심하천을 어린이 테마공원처럼 꾸며 대단한 볼거리로 만든 광경, 도무지 정체불명이요 괴이한 형상의 다리들과 우스꽝스러운 벽면장식과 까닭 모를 조형물들…… 우리네 공공시설물 디자인 수준의 유치찬란함이 세계적 수준이라고는 하나 이는 그 종합판 아닌가.

 

그래도, 역사도시 서울을 오랫동안 짓눌렀던 고가도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두어 주었으니 감사하고 감사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그렇게 여기며 청계천을 건너가기에는 나의 우울이 너무도 무겁고 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