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잃어버린 도시

경향신문 '오피니언'

2014. 9. 11

지난 번 칼럼에서, 나는 몇 사람들과 동행하여 유럽의 묘지들을 두루 살피러 떠난다고 밝힌 바 있다. ‘죽은 자들의 도시, 그 풍경기행’은 예고한대로 우리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적 기행이었다. 사이프러스 나무 속, 그 땅의 원초적 집을 닮은 무덤에 누운 이들의 모습은 그들 삶이 어떠했건 이제는 모두 경건하며 평화로웠고, 남은 자 된 우리에게 그래도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침묵으로 말하고 있었다.
스위스 티치노지방의 벨린초나 외곽 몬테카라소는 인구 3천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루이지 스노치라는 이 지역의 존경 받는 건축가가 1980년대에 마을의 집 하나를 설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중세의 기억에 머물러 있던 이곳의 집들과 공공시설을 차례로 개조하면서 마을전체가 성공적으로 재생되어 유명해진 곳이다. 정갈한 마을 한 가운데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바로 옆에는 어린이 놀이터와 조각공원이 있고 교회와 학교도 이웃하여, 이 묘역을 지나며 죽음을 목도하는 일은 이 마을에서 가장 일상적 풍경일 수 밖에 없다. 짐작하건대 마을 주민 모두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형식이 끝나면 이 묘역에서 그들도 안식할 것을 알 것이다. 그러니 그 안식이 명예롭기 위해 그들은 오늘을 아끼며 삶을 가다듬어야 한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보상이다. 그래서인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 마을은 작게 보이지 않았다. 마을 여기저기 피어나고 자란 꽃과 나무 마저 그 생명이 진실되고 아름다웠다.
물론 그 마을만 그런 게 아니다.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들 모두가 죽음의 형식을 일상에 가지고 있다. 도시의 가운데에 마을의 어귀에 성당의 뒤뜰에 늘 죽음을 두고 삶을 사는 그들이니, 그 삶들이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도시가 지속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여러 시설이나 장소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신성하고 경건한 침묵의 장소라고 했다.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어쩔 수 없는 도시의 일상이라고 해도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맑게 빚는 고요함이 없으면 도시는 이내 피로하여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는 아크로폴리스와 네크로폴리스 사이에 아고라를 두어 신과 죽은 자와 산 자의 영역으로 삼았으며, 시대를 거듭하여 종교의 형태와 생활의 습속이 변해도 묘역과 신을 받드는 시설은 부랑자들에게도 경외의 대상이었다. 현대라고 다를 바가 없다.
사실은 우리에게도 옛 마을에는 묘역이 가까이 있었고 개인의 집에도 사당이 있었으며 재각이나 비각 혹은 제공소나 서낭당 등 많은 시설이 영혼과 관계하는 경건과 침묵의 영역으로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게 하고 마음을 곧게 했다. 그러나 지난 시대 이 땅에 분 개발광풍으로 도시는 우리 삶의 공동체가 아니라 부동산의 공동체로 변하면서 묘역은 우리의 일상과 공존할 수 없는 혐오시설이 되어 쫓겨났고 재물의 맛에 취한 교회와 사찰은 시장보다 더 상업적인 곳으로 변했으니, 이 도시에서 우리의 마음을 고요케 하는 성소를 찾는 일이 이제는 도무지 쉽지 않게 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이토록 경박하고 몰염치하며, 예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이유가 그 동안 우리가 만든 어지러운 도시풍경과 관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드는 것과 같이, 도시 또한 우리 사회를 다시 만든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도시공간의 구조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성찰적인 도시는 어딜까? 메카나 예루살렘 같은 종교도시? 아니다. 종교의 도시는 근본적으로 배타성을 갖게 마련이며 그로 인해 분쟁의 원인일 수 있어 아무리 영성을 강조해도 성찰적이지 못하다. 성찰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보편성을 떠나 이뤄질 수 없다. 이 관점에서 성찰의 도시는 단연코 베를린이다. 영국의 여행안내지 ‘타임아웃’은 이 도시를 “명상과 대화와 교환의 메트로폴리스”라고 이름하였다. 베를린은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가 13세기일 정도이니 장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들의 서구에서는 대단히 젊은 도시이다. 그러나 이 베를린은 도시형성의 모든 절차를 압축하며 거쳤고 심지어 질곡의 현대사를 받아내며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쓰린 역사를 성찰하며 다시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진화한다.
나는 ‘죽은 자들의 도시’ 기행을 마치고 일행과 헤어진 후 이 도시로 건너갔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기도 하지만, 성찰을 전제로 하는 여행은 여기서 매듭을 짓는 게 좋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갈 때마다 먼저 찾는 곳이 있다. 운터덴린덴 가로변에 불과 70평 남짓한 크기의 전쟁기념관 속 비어진 공간, 캐테 콜비츠가 전쟁과 학정의 희생자들을 위하여 만든 세상에서 가장 슬픈 피에타상을 본다. 여기서 나오면 건너편 베벨광장에 땅밑으로 파고 들어가 설치된 비어진 하얀 서가 앞에 서서 ‘책을 불태우는 자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는 하이네의 경고를 다시 새긴다. 그리고 포츠담광장 부근의 미술관과 음악당을 가는 길에는 파시스트 범죄를 잊지 않으려는 장소들과 이데올로기의 학정을 기억하려는 베를린 장벽의 흔적들을 수도 없이 만난다. 도시 전체가 기억의 박물관이며 성찰의 표식인데도 또 여전히 확충하고 있는 그들이다.

베를린에 온 구체적 목적은 서울의 공공프로젝트 전시회의 개막식과 심포지엄 참석이었다. 서울시가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몇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울의 변화를 알리고 더욱 바람직한 방향모색을 위해 이곳의 도시 건축학자들과 담론을 형성하고자 한 일이다. 우리가 내세운 전시회의 제목은 “메타시티 서울(Seoul, toward a Metacity)”이었다. 내가 번역하자면 ‘성찰적 도시’인데, 성장과 확장에 몰두하였던 메가시티의 시대와 결별을 다짐한 것이다.
전시장은 무채색의 사진과 도판으로 대단히 절제되고 내용은 깊었다. 그래, 서울이 이래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의 명구가 떠 올랐다. 그가 쓴 ‘침묵의 세계’의 말미에 나오는 글귀이다. “살아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 이 황망한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경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