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뷔제의 귀환-진실의 건축

중앙일보 문화

2011. 6. 09

내가 믿기로는,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는 단연코 르 코르뷔제이다. 1887년에 태어나 78세로 생애를 마친 이 불세출의 건축가가 우리의 현대적 삶에 영향을 미친 범위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그는 모더니즘의 정신을 요약하였고 원칙을 세웠으며 수 많은 글과 그림과 건축을 통해 그 가치를 실천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현대의 어떤 건축가도 결코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그는 지금에도 여전히 건축과 도시의 중요한 교본이며 논쟁의 핵심이 된다. 위대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그는 어떻게 교육받았을까? 여행을 통해서다.
현재에도 10 스위스프랑 지폐의 얼굴인 그는 스위스의 작은 산기슭 마을 라쇼드퐁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시계공이고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이라 예술적 재능은 이어 받았겠지만, 그의 환경은 산속의 자연이어서 그가 건축교육에 접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 시골의 학교선생은 건축의 위대함을 아는 에콜드보자르 출신이어서 코르뷔제에게 건축을 하도록 권유하며 여행을 떠나게 한다. 스무 살 되던 해 시작한 이 5년간의 여행은 그의 삶에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파리에 가서 도시의 모습에 눈을 뜨고 콘크리트와 철의 기술을 배웠으며 비엔나에서 세쎄션이라는 새로운 물결을 배웠고 베를린에서 혁명에 들떠있는 젊은 건축가들과 교우했다. 그리고 이어진 발칸반도와 그리스 터키의 여행에서 드디어 건축의 고전을 마주하게 된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파르테논을 스케치하며 이렇게 말한다. ‘건축은 빛 속에 빚는 볼륨의 장엄한 유희이다.’ 그는 이 동방여행을 통해 스스로 건축을 배웠고 건축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깨우쳐 샤를 에두아르 잔네르라는 본명마저 르 코르뷔제로 바꿨다. ‘에스프리 누보’라는 잡지의 창간과 많은 저술을 통하여 이론적 토대를 다지고 퓨리즘을 창시하며 파리와 세계 문화의 주류적 위치에 단숨에 오른 그는, 기술을 신봉한 모더니즘 이론을 세우며 건축과 도시에 혁명적 성과를 만든다. 지금 봐도 초현대적인 빌라사보아를 80년 전에 지었고 오늘날의 아파트보다 훨씬 진보적인 유니테따비따시용은 60년 전의 일이었다. 유엔본부를 설계했고 인도에 챤디가르 신도시를 세웠으며 일본에 미국에 남미에 그의 이념은 전지구적 범위에 전파되고 세워졌다.
그의 작품 중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것이 프랑스 벨포르에 있는 롱샹교회당이다. 언덕 위에 지은 이 순례 성당은 충격이었다. 아름다운 곡선과 강렬한 형태로 건축이 시가 되었다. 많은 아류를 배출하였고 수 없는 숭배자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의 교조라 칭하며 그를 추종했던 냉철한 이성의 건축가와 지식인들에게는 아픈 배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세운 교리를 스스로 부수며 새 길로 나아가 얻은 위대한 창조였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의뢰 받게 된다. 롱샹의 건축주였던 쿠드리에 신부가 리용 근처에 짓는 라투렛 수도원의 설계를 부탁하는데, 조건이 있었다. 12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남부의 르토로네 수도원을 참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모든 사물에서 득도한 당대의 거장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70 평생 옹고집으로 일관된 삶을 산 이 노장의 건축가는 이내 그 로마네스크 시대의 수도원을 찾는 여행길에 오른다. 파리에서 일천 킬로가 넘는 길을 곧장 가지는 않았을 것인데, 혹시 지난 달말 내가 순례한 이런 루트를 탔을 게다. 먼저 파리에서 일백 킬로 정도 떨어진 퐁트네이 수도원을 가서 시토회 수도회의 검박한 건축을 보고 수도원 건축의 원칙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인근에 있는 베즐레이 순례도시에서는 순례자가 가지는 경건을 체득했을 것이고, 남쪽 밑에 있는 클뤼니 수도원의 폐허에서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도 사유했을 것이다. 프로방스에 도착하여 보랏빛 라벤다가 가득한 세낭크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절박한 삶이 빚은 침묵에 감동했을 것이며, 드디어 르토로네에 도달하여 그 여행에서 만난 모든 건축을 더한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만다. 이는 건축의 본질을 찾아 온 생애를 밤바다에서 항해해 온 그가 결국 찾은 종착점이었다.
라투렛을 여행한 후 파리에 돌아온 그는 사진가에게 그 오래된 수도원을 찍게 하고 ‘진실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하게 하여 직접 쓴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어떤 것도 여기에 더해질 수 없다….이 엄청난 조우를 기뻐하고 축복하며 반기자.”
그는, 새로 짓는 라투렛을 철저히 그 르토로네의 건축정신을 모방하며 그렸다. 파르테논을 보고 전율하였어도, 고전적 건축에 가위질을 그려 놓으며 새로운 건축의 모든 원칙을 만들고 주장한 그가 다시 고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라투렛을 모조품이라며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르뷔제 작업 전체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창조며, 인류에게 헌정된 20세기 최고의 건축이며 예술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