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도시와 건축의 운명

중앙일보 사회

2011. 4. 06

조경가로서 토속적 풍경에 대해 영향력 있는 글들을 남겼던 미국의 존 B 잭슨은 ‘폐허의 필요성’이란 글에서, “폐허는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근원을 제공하며, 우리로 하여금 무위의 상태로 들어가 그 일부로 느끼게 한다.” 라고 하였다. 내가 폐허지를 여행할 때면 언제나 내 머리 속에 맴도는 글귀이다.
나에게 건축과 도시는 무생물이 아니다. 건축이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완공함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살게 되는 거주자의 삶으로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도시 역시 태어날 뿐이어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하는 생물적 존재라고 여긴다. 만약에 건축이나 도시가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붕괴나 몰락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극단적이지만 그 완성의 존재체가 폐허라는 것이다. 그래서 폐허에 서면 나는 자못 비장해진다. 온갖 삶이 꿈틀대던 역사의 현장에 서서 당대의 삶을 유추하고 상상하는 일이 흥미롭기 그지 없더라도, 그 상상이 끝난 후 눈앞에 펼쳐지는 폐허의 현실을 다시 응시하는 일은, 내가 건축의 본질을 겸손히 되물어야 함을 요구 받는 일과 다르지 않다. 특히, 최고의 문명사회를 이루었음에도 그 절정의 순간에서 붕괴되어 그 형해만 남은 폐허에서는 더욱 그러했고, 그 여행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허탈에 빠졌다. 어떤 이유에서 세워지건, 건축이나 도시는 결국은 붕괴되기 마련이었다.

폼페이가 그 대표적 보기였다. 이천 년 전의 이 폐허는, 견고한 도시구조를 갖추고 최고의 도시적 삶의 풍요를 구가하던 완벽한 도시였다. 외곽의 농경지에서 풍부한 농산물이 공급되었고, 이만 명이 살 수 있는 쾌적한 크기의 성내에는 신전과 공회당이 있는가 하면 술집과 매음굴도 있었으며, 부잣집 바로 옆에 빈자가 살았다. 시민의 위락을 위해 공연장, 경마장, 공중목욕탕 등이 즐비하였고, 로마에서 오는 휴양객들을 맞이하는 거리에는 활력이 넘쳐 골목마다 늘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현대적 도시개념으로도 완벽하였다. 그러나 서기 79년, 그들 곁에 있어 늘 믿었던 베수비오 산이 폭발하여 칠백 년의 도시역사가 순간적으로 멈춰버린 것이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으므로, 그래서 멸망했을 것이라고까지 나는 여겼다.
멕시코 시 북쪽, 오십 킬로미터 정도에 ‘신들의 도시’를 의미하는 테오티후아칸이라는 폐허가 있다. 7세기경에 멸망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이 도시 중앙에는 너비가 백 미터나 되고 길이가 자그마치 오 킬로미터가 넘는 직선의 길이 뻗어있어 장관을 이룬다. 이 ‘죽은 자의 길’로 불리는 중심축 주변에는, 북쪽 끝에 ‘달의 피라미드’, 동측에는 ‘태양의 피라미드’ 등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수도 없이 많은데, 폐허만으로도 그 장엄함에 압도 당할 수 밖에 없다. 무려 이십만 명이 살았으리라 짐작되는 이 도시를 누가 건설했는지 왜 멸망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제의성 짙은 공간조직과 거대구조물들, 각종 신전과 주거지들로 미루어 당시 세계 최고의 종교와 문화의 도시였음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보름달 오르는 밤,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가마에 태워서, 모든 이들이 화려한 장식을 하고 소리치고 노래하며 사자의 길을 행진하여 달의 피라미드에 오르는 의식을 거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그녀의 간을 꺼내어 그들의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 피로 그들의 영원무궁을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폐허만 남았으니, 그들이 목숨 바치며 믿었던 주술의 신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크메르제국의 수도로 11세기에 백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가진 이 도시는 이미 인구로서 세계 최대였으며 그들이 이룬 문명과 예술 또한 불가사의한 수준이었다. 메루산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고 이를 형상화하여 둘러싸고 건설한 궁궐과 사원은 그때까지 역사에 존재했던 어떤 건축물보다 크고 아름답고 정교했다. 그들은 그러나 중심은 취했어도 주변의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하여 이웃 나라에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 땅에 남은 이들은 마치 미개인과 다를 바 없는 원초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안데스 산맥 속의 마추피추도 그렇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높은 산 위에 왜 존재해야 했는지 어떻게 멸망했는지 어떤 단초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들이 세운 도시가 종교와 문화, 정치와 안전, 생산과 소비를 위한 제반시설을 갖춘 완벽한 자족적 도시며 그래서 영원무궁토록 존재하리라고 단연코 믿었을 게다. 이상도시를 꿈꾸며 완벽한 고립을 자초한 게, 그들의 삶을 지속하지 못하게 했을까.

나는 요즘, 일본의 참상에 대해 예민하다. 현대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시스템을 자랑하던 일본이었다. 그들의 슬픔에 대해 객관적인 것조차 죄스럽지만, 이 미증유의 폐허는 우리에게 어떤 겸손을 또 요구할 것인가. 잭슨은 그 글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역사는 중단함으로써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