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로렌초 김수근과 최고의 한국현대건축 공간사옥

2013. 11. 10

지난 세기의 건축을 논할 때면 '롱샹교회당'이나 '라투렛수도원', '베를린 현대미술관신관' 혹은 '구겐하임미술관' 같은 작품이 반드시 거론될 것인데, 현대건축 3대 거장으로 불려지는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역작들이다. 이 걸작들은 이성과 합리를 내건 모더니즘의 한계를 공간의 힘으로 극복하며 건축역사를 바꾼 대사건이었으며, 그 자체로 이미 20세기의 문화가 되었다. 이 건축들의 공통점 하나를 또 들면 모두가 이 거장들의 말년인 7,80세에 만들어진 노작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관조할 나이가 되어야 위대한 창조를 할 수 있는 걸까? 실제로 위대한 건축가들은 대부분 장수했고 백수까지 누린 이들도 많다. 첫 번째 프리츠커 상을 받은 필립 존슨이 100세를 살았고, 유엔본부와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오스카 니마이어는 작년 말 죽을 때 105세였으며, 동양인으로도 당케겐조나 이오밍페이는 100세를 넘겼거나 가까운데도 여전히 현역이다.

그러니 건축가가 55세에 죽는다는 것은 요절이 아닐 수 없다. 김수근이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 김수근. 일본에서 건축수업을 마친 그는 1961년 현대건축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이 땅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한국의 현대건축에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낸 시대의 건축가였다. 모든 상황이 서구에 한참을 뒤떨어져 있던 그 당시에, 그는 당대의 세계적 건축개념과 기술을 그대로 선보이며 '자유센터'나 '한국과학기술원본관'을 지었고, '부여박물관'으로 전통논쟁이 일자 한국성 탐구에 몰입하며 '공간사옥'과 '문예회관', '청주박물관'과 '경동교회' 등 보물 같은 걸작들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척박한 문화적 환경을 타파하고자 문화예술잡지 “공간”을 창간하고 그 토대를 통해 수많은 문화적 성취를 소개하고 담론을 형성하였다. 최순우 백남준 박용구 강석희 최정호 소흥렬 박용숙 등 쟁쟁한 문사들이 공간사옥에 모이고 헤어지며 한국의 시대와 문화를 논했다. 그 뿐인가. 공간사옥 내의 소극장 “공간사랑”을 통해 김덕수 사물놀이를 처음 만들어 소개했고 '병신춤'을 추던 공옥진 같은 지방의 예인들을 고급무대에 서게 하는 등, 고유한 한국문화의 적극적 발굴자이며 지원자였다. 그런 그를 타임 지에서는 '한국의 로렌초'라고 소개하기도 했으니, 그로 인해 한국 현대문화의 불씨가 지펴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게다. 폭풍 같은 삶을 살던 그가 받은 대가는 55세의 운명이었다. 1986년 그가 세상을 떴을 때, 그가 활동한 생전 25년간은 다른 이들의 백 년 같은 삶의 내용이었다고 많은 이들이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잊혀져 갔다. 아니다. 건축을 부동산으로만 아는 우리 사회는 그를 강제로 떼어내었다. 보석 같던 우석대학병원 정문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졌고, 세계의 건축가들이 보고 놀라워하던 자유센터와 해피홀은 분탕칠 되거나 괴기하게 변형되었으며, 한국일보 구사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동교회의 옥상교회는 그 원형이 돌아올 기약이 없고, 그리고 드디어 그의 분신인 공간사옥은 경매에 처해지는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미숙하고도 슬픈 경험으로 미루어 언젠가 이 건축도 사라지고 그로써 김수근도, 그가 일군 지난 시대의 문화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공간사옥은 한국현대건축의 자존심이다. 늘 선두에 거론되어왔다. 한국의 건축가들은 물론 세계의 건축가들에게도 그렇다. 건축을 아는 이라면 모두가 이 건축이 가진 놀라운 공간의 힘에, 한국성의 표현에, 탁월한 섬세함에 그리고 그 드라마틱한 조직에 탄복하고 경외한다. 더구나 김수근이 뿌린 문화의 향이 너무도 깊고 짙게 베어있어, 이는 단순히 한 건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화다. 그런데, 부동산 매물로 회자되다니… 이 초라함이 아직도 우리가 안아야 하는 초상인가.

제안하겠다. 지난 시대 우리의 문화 생산지였던 이 건축을 이제 공공의 장소로 변환하기 위해 공공에 귀속되도록 하자. 부디, 국립이든 시립이든 건축박물관으로 전환해달라. 그렇게 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김수근에게 진 빚 때문 만이 아니다. 이 시대에 만연한 야만성과 천박함을 그래도 바로잡고자 하는 문화의 힘이 우리에게 있을 거라 믿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