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유적-유경호텔

2006. 1. 14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의 끝부분에 붙어 독립되어 있는 만큼 무려 반만년의 기록을 자랑하는 역사적 지역이며 오랜 세월 동안 단일의 민족과 단일의 언어가 사용된 특별한 지역이다. 주변의 중국과 일본과는 끊임없이 교류하면서도 고유한 전통과 풍경을 만들어 온 이 지역은, 놀랍게도 그 오랜 수 천 년의 세월이 가져다 준 변화와 맞먹는 변화를 지난 한 세기에 다 겪는다. 서양문물의 침투와 일본제국주의의 강점, 이 지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국제적 정치지형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 전 국토의 참혹한 파괴,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에 의한 강제적 분단, 러시아와 미국 두 양대 강국 냉전의 전초적 기지화에 따른 풍습과 의식의 변화 등, 세계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추구에 혈안이 되는 동안 이 아름다운 반도는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유린 당한 야만의 시대를 겪은 것이다.
남쪽에서는 아메리카나 팍스였다. 그 앞잡이 역할을 한 독재자들은 반공의 이념을 내세우며 무력을 길러 시민의식을 제압하고 자본가들과 결탁하여 서양화 미국화에 국민을 내 몰았다. 전통적 가치는 팽개쳐지고 무국적의 난잡한 상업적 풍경이 국토를 뒤덮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유린하였다. 그리고 지금,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한 남쪽은 그 심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공산주의혁명을 외친 북쪽의 독재는 자주성을 내세우며 세계로부터 고립을 자초했으며 철저한 단일중심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보다는 이념을 앞세운 당이 전 국토와 생활을 지배하였다. 시민의 생활은 피폐해졌지만 국가적 이념을 위한 도구들은 날로 화려해졌다. 유경호텔은 그 연장에 있는 것일 게다.
이 20세기의 한반도 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역사의 보편적 발전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것은 물론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 변화하고 갈등을 겪은 것도 아니다. 20세기 국제사회의 갈등이 낳은 사생아였다. 그러나 그 흔적을 지워버릴 수도 없다. 아니다. 지워서는 안 된다. 그 흔적들은 한반도의전통적 고유문화의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잉태된 역사인 것이다. 그것은 교훈으로 남아야 하며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이로부터 진보할 것인가에 있다.
루카치(Gyorgy Lukacs 1885-1971)는 문화에서의 진보에 관해 언급하길 “그것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요청에 따라 앞선 시대의 업적들을 흡수한다”고 하며 “진보란 누적적이다”라고 하였다.
원래, 독재자들의 역사관은, 역사를 과정으로 인식하지 아니하고 지난 역사를 부정하며 소위 신세계 창조의 구호를 외치거나, 혹은 앞으로도 지속될 역사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당대로써 그때까지의 모든 역사를 종지부 찍으려 하는 일그러진 과대망상의 소이로 나타난다.
유경호텔은 지난 시대의 구호이다. 구호와 선전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저급한 의식을 가진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의 건축은 항상 투시도적이다. 투시도에서 나타나는 배경은 주로 짓푸른 하늘이며, 광활한 평원이어서 주변의 정황은 무시될수록 좋고, 오로지 선동적 기념비적 건축이 위압적으로 솟아 오르게 표현된다. 거기에는 선동과 감격이 있을 뿐이며 그 속에서의 삶은 왜소하거나 제거되기 십상이다. 반면 조감도에서 그려지는 것은 건축 자체뿐이 아니라 그 건축이 디디는 땅을 그려야 하고 도로를 그려야 하며 이웃이 표현되고 그들끼리의 관계가 나타나야 한다. 시점을 높이면 높일수록, 표현되어야 하는 관계들이 더욱 넓어지고 많아지며, 그 스스로의 모습 자체는 어떻게 생겼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 즉 그려야 하는 것이, 껍질의 모습이 아니라 그 속과 그 밖의 삶의 형태인 것이며, 공동체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새로운 시대는 투시도적 그림을 요구되는 사회가 아니다. 투시도는 우리에게 허상과 환상만을 불러 일으킨다. 환상은 예술을 백일몽 차원으로 떨어뜨리는 하나의 기만이며 사기일 뿐이다. 선동과, 구호와 선전의 건축들의 목적이 '도취' 에 있다면 이는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의 효과만큼 인간을 비인간화 시킨다. 이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유경호텔은 우리가 몸서리치게 경험해야 했던 지난 시대의 기록이며, 현대의 유적이다. 그래서 이 역사적 건축은 남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건축으로 또 다른 상징과 선전부호를 만든다면 그것은 지난 잘못된 시대를 연장하는 것일 뿐 아닌가.
유경호텔이 있는 평양에는 여전히 유려한 대동강과 아름다운 산들이 있다. 반만년 역사를 고스란히 침묵으로 간직한 자연풍경이다. 왜 유경호텔을 여전히 투시도적으로만 보는가. 하늘에 올라 평양의 풍경 속에 이를 넣어보면 어떤가. 그게 한반도에 건축하는 방법이며 오랫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윤리이다.
루카치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참된 예술은, 우리의 삶의 전망을 보다 명료한 초점 거리 안으로 끌어들여,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를 알게 함으로써, 또한 사회 및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우리 내면에 도덕적 자발성을 유발시킴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발전에 보다 폭 넓고 깊이 있는 의식을 갖게끔 할 수 있다……예술의 사회적 사명은 예술과 삶에 있어서 '총체적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창조하는 데 기여하는 일” 이라고 하였다.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