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됨을 즐기는 고독의 집, 독락당

중앙일보 사회

2012. 3. 10

경북 안강에 “독락당(獨樂堂)”이라는 옛집이 있다. 조선 중종 때 성리학의 거두 회재 이언적(1491-1553)이 정쟁에 휘말린 후 낙향하여 지은 집이다. 원래는 태어나고 자란 양동마을로 돌아가야 했으나, 불혹의 나이로 중앙정치무대에서 쫓겨난 초라한 몸은 처가살이가 싫었을까, 둘째 부인이 사는 자옥산 기슭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 집은 둘째 부인이 지은 안채와 숨방채, 아버지가 지은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회재는 주변의 경관을 끌어들이는 탁월한 건축수법으로 이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증축하여 독락당이라 이름하며 중앙정치로 복귀할 때까지 7년을 ‘홀로 즐기며’ 살았다.
내가 오래 전 이 집을 처음 갔을 때 우선 그 집 높이가 몹시 낮아 의아했다. 담장도 낮지만 그 안에 있는 집들은 마치 땅으로 꺼진 듯 낮았다. 필경 후대에 세웠을 솟을 대문 만이 높아 본채와 부조화를 이루는데, 당혹스러운 것은 대문을 들어서 앞마당을 지난 다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세 개의 입구가 있는데, 오른쪽 하나는 계곡으로 연결되는 좁은 통로였고, 나머지 두 개의 문 중에서 왼쪽 하나를 열고 들어가니 깊고 길다란 마당이 있었다. 좌우 집의 높낮이가 달라 낮은 왼편은 하인들이 기거하던 숨방채고 오른 편은 안채다. 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문이 이 큰 집의 정문인 셈인데 그 크기가 너무도 작다. 아마도 이 좁은 마당을 가두기 위함일 게다. 안채의 마당은 그래서 더 비밀스런 세계로 보였다. 이곳을 나와 다시 그 입구 오른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너른 마당이 나오는데 사랑채인 독락당의 영역이다. 위엄 있는 다른 집의 사랑채와는 달리 불과 한 단 위에 세워진 네 칸의 독락당은 집 자체가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담장으로 구획된 마당이 중심이고 이 마당은 담장너머 주변의 산들을 경계로 삼는 세계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문제는 이런 마당이 여기 하나가 아니라 이 집의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맨 뒤편 사당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 두 개의 마당을 겹쳐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고 있었으며, 창고로 쓰이는 공수간 마저 은밀한 마당으로 독립되어 있다. 가장 놀란 것은 이 집의 정자인 계정이었다. 사진으로 보던 아름다운 풍경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뒤편 마당 구석의 건물이 계정이라고 했다. 그럴 수가…집의 동쪽 밖 계곡을 흐르는 자계천 너머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건축이만, 놀랍게도 이 정자는 집안에서는 마당을 형성하기 위한 벽체의 일부로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집의 모든 건물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철저히 마당을 형성하기 위한 한낱 도구였으며, 각기 다른 마당은 각기 독립된 세계였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앞둔 회재는 그런 마당 어디에서도 은둔하며 ‘독락’하려 한 것이다.

이와 극명하게 비교되는 집이 독락당과 같은 시대에 서양 땅에 지어진다. 서양건축의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면서 지금에 이르도록 가장 중요한 텍스트가 된 “빌라로툰다”라는 집이다. 회재보다 17년 후에 태어난,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가 은퇴한 사제를 위해 설계한 이 집은,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 비첸차의 교외에 세워졌다. 비첸차는 팔라디오가 설계한 올림피코 극장을 비롯한 여러 건축으로 “팔라디오의 도시”로 불리며 도시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르네상스의 도시이다. 한적한 동네의 가장 높은 언덕 한 가운데에 세워진 이 집은 정방형의 평면을 십자로 가른 다음 가운데 둥근 홀을 두어 이를 로툰다라고 불렀다. 이 로툰다 홀의 둥근 천정과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 그림에는 신들로 둘러싸인 우주가 묘사되어 있다. 홀의 중앙에 서면 동서남북으로 뚫린 통로를 통해 밖의 풍경이 한 눈에 파악되는데, 정점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으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심 된 자인 듯 존재감을 드높이게 된다. 그러니 이 집은 자연과 대립적 관계이며 그 지배의 우월을 나타내기 위해 언덕 위에 우뚝 솟는 게 당연했다.
나의 존재를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어 주는 이 기념비적 집은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그 후에 생긴 수 많은 집들이 이 집을 모사하였고 심지어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코르뷔제를 비롯한 현대의 건축가들이 지은 집들도 이의 번안이었다. 그럴 만큼, 이 집은 수백 년 동안 서양건축의 핵심적 위치에 있어왔고 어쩌면 지배체계를 따지고 종속관계를 중요시해 온 서양문화의 중심가치를 상징한 집이었다. 집은 그저 주변의 풍경과 마당을 경계 짓는 수단일 뿐이라는 독락당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빌라로툰다가 혼자 사물을 지배하며 즐기는 집이니 한자로 쓰면 역시 독락당 아닌가. 그렇다면 이 집과 전혀 달리 회재가 지은 독락당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음이 홀로 서야 이(理)가 생긴다”는 회재에게 독락의 뜻은 ‘혼자서 즐기는 집’이 아니라 ‘홀로 됨을 즐기는, 고독의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