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폐허에 서서

2006. 5. 21

죽음의 운명을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것처럼 건축도 결국은 무너져 소멸하게 마련이다. 세운 자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제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었더라도 중력의 법칙에 끝까지 저항할 수 있는 건축은 세상에 없다. 남는 것은, 오로지 기억이다. 건축은 사라져도, 그 건축의 이유에 대한 기억, 그 속에서 산 인물과 그들이 이룬 사건에 대한 기억만이 영원한 것이다. 한 역사의 종말인 폐허에 서면 그 장소가 경건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그 곳에 기록되었던 삶의 켜들을 묵중하게 느끼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폐허지에 서면 나의 삶을 되새기게 하여 그 곳에 가는 일이 귀하고 소중하다.
흔히들, 우리의 건축은 주 재료가 목재였던 까닭에 서양의 폐허에 비해 그 가치가 없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석재로 지어진 서양의 건축은 폐허라 하더라도 원 모습을 부분적으로라도 가지고 있는 게 대부분이어서 과거의 영광을 유추하기 쉽거나 그 자체로도 훌륭한 경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의 폐허는 그저 영역만을 나타내는 초석 몇 개만 남아서 상부구조를 알기란 영 쉽지 않다. 목재와 흙으로 지어졌던 까닭에 완벽히 사라졌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러한 완벽한 폐허에서 오히려 건축의 진실된 숙명을 목도한다. 아직도 악다구니 하듯 몇 개 편린이 잔존한 폐허보다, 가득한 비움의 미학을 마침내 이룬 우리의 폐허는 한 편의 애틋한 서정시이며 맑은 수묵화다. 이 비움이 우리 삶의 진정한 목표 아니던가. 그래서 어느 철인은 역사는 중단함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지난 달, 경주에서 황룡사복원을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토론자로 참가하였는데 많은 학자들이 초석만 남은 신라시대 최고의 절을 복원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난감하게 하였다. 영화세트처럼 복원된 황룡사가 과거의 영화를 재현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단선적 생각이며, 우리의 기억을 박제할 뿐이라고 나는 강하게 반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주가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는 일은, 현재의 천박한 도시 풍경을 개선하는 일이지 우리의 기억이 시어처럼 퍼져있는 황룡사 폐허지의 진정성과 경건성을 소멸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 복원은 싸구려 삶이 횡행하는 급조된 도시에서 하는 일임을 왜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