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02. 8. 27

건축가에게 전시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어졌거나 지어지지 않았더라도 설계된 건물들의 사진이나 도면 그리고 모형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설명하는 많은 건축 전시회들이 있어 왔다. 물론 한 건축가가 여태까지 작업하여 온 결과들을 기록하여 한 자리에서 다시 보여 주는 의미도 중요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한 건축가의 사고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전시회의 문제는 다른 매개 수단을 통할 수 밖에 없게 된 그 건축의 이미지가 실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있다. 실제적 장소에 지어진 건축을 오해하게 하거나 더러는 왜곡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화가나 조각가들에게는 그들의 작품이 작업장에 있거나 전시장에 있거나 그리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전시장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작품들에게는 이상적 장소일 수 있다. 그러나 건축가에게 전시장이라는 장소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건축은 그 장소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믿는 나에게는 더욱이 그러하다. 구체적 건축을 알기 위해서는 그 건축이 있는 장소에 가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환상만 남게 될 뿐이라고 여긴다.

물론 이 전시도 내가 이제까지 해 왔던 나의 건축을 보여 줄 것을 요청 받은 것이다. 그러나 장소를 바꾼 내 건축이 관람자에게 올바로 전달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따라서 비록 이미 세운 바 있고 혹은 앞으로 지을 예정인 건축을 전시하지만 그 주제를 빌려 새로운 건축을 지어 보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400평이나 되는 전시장을 나에게 설계 의뢰된 땅으로 간주하고 그 위에 내가 생각한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하였으며 그 속에 건축공간을 만들어 내가 생각하는 건축의 편린들을 보이게 되었다. 아, 그러나 이는 어마어마한 작업의 양이다.

그래서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올해의 작가’ 선정에 대한 의견이 있었을 때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나의 초라한 행적을 나타내는 일도 참으로 민망할 뿐 아니라 이 전시의 규모가 내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날 것이 틀림 없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장고 끝에 둔 악수일 게다. 나는 미련스럽게도 열악한 한국 현대건축에 대해 원망을 깊이 간직하고 있어 요행수를 바라며 끝내 수락하고 말았다. 이 미욱함이 나로 하여금 수 많은 이들에게 죄를 짓게 하고 폐를 끼치게 하였던 것이다.

첫째 죄는 몇 분에게 자문의 역할을 부탁한 것이다. 특히 민현식 선생에게는 못할 죄를 지었다. 원래 내 사고의 평형을 잡아주실 것을 부탁하여 특별 큐레이터 직을 강권하다시피 하였지만 그 역할은 물론 전시 후원금을 거두시게 하는 참 곤란한 일을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박기태 선생이나 신용덕 김영준 고일두 선생에게도 그 수고하심을 두고 두고 갚을 것이다.

둘째는 후원하신 분들에게 끼친 폐이다. 이 전시회에는 나의 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비용이 필요하였다. 모든 게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으며 전시회 후에는 거의 모두 폐기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작업이 끝난 후 환금이 가능한 미술하고는 참 다른 전시가 된다. 몇 분과 의논한 끝에 국내 굴지의 P기업에게 후원을 청했다. 전시회의 의의를 충분히 파악한 후 전액을 후원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정치적 사건에 연루가 되어 담당 라인이 와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전화위복이 된다. 건축가의 후원자는 전통적으로 건축주가 되어 왔다. 파트롱이란 직능이 건축주에게 있음을 상기하고 나는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건축의 건축주들에게 후원을 부탁하였다. 고마웁게도 ‘휴맥스’는 내가 필요한 재정의 반을 채워주었고 ‘웰콤’을 비롯한 나의 건축주들은 모두가 나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해 주었다. 후원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한 중국의 건축주인 ‘Redstone Industrie’, ‘대전대학교’, ‘차병원’, ‘주로인터내셔널’, ‘나리병원’, ;최가철물점’, ‘호운미술관’ 그리고 ‘파주출판도시의 조합’, 이분들에게 조아려 감사 드린다. ‘한샘’은 내 개인의 건축주가 아니지만 한국건축의 파트롱으로서 지원하여 주었다. 감사 드린다. 특히 이런 전시마다 그 설치와 공사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삼협건설’과 ‘뉴라이트’에 대해 감사 드린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오광수 관장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 건축가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전도가 불투명한 나임에 더욱 그러하였을 것인데 나를 선정하여 나의 건축에 대해 심각하게 자성할 기회를 준 데 대해 감사한다. 건축이 문화임을 믿는 그분들이 있어 이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이 건축 전시회를 위해 수고한 나의 이로재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이들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다. 이들의 말할 수 없는 수고가 오늘의 전시회를 만들었음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이들이 자랑스럽다. 특별히 이 일을 위해 달려든 이재준의 공을 잊지 못한다.

얼마 전 부산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를 목적지까지 차를 태워준 그 지방의 건축사 사무소 대표가 나에게 그들의 열악한 건축환경을 아느냐고 물었다. 저급한 건축주의 횡포와 비열한 시공자의 탐욕 그리고 이들과 합세한 공무원의 위협 등에 건축하는 것을 수 없이 자괴하고 후회하는 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 전시회를 보여주고 싶다. 가능하면 그 사슬을 과감히 끊고 다시 참 건축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영광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하나님께서 받으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