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맥스빌리지_오피스 빌딩과 symbolism

2007. 4. 21

2001년 9월11일, 새로운 세기를 축하하는 흥분이 다 가시지 않은 시점에 뉴욕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무역센터빌딩이 무려 7천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며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른 바 911사건이라는 이 테러리즘의 파동은 아직도 지속되어 수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의 생명을 다시 학살하며 전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놓고 있다. 나는 이 참혹한 비극의 실체를 논쟁할 입장에 있지 못하지만 건축가로서의 관심은 왜 그 테러리스트들이 그 건물을 목표물로 삼았을까 하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 건물이 가졌던 상징적 가치다.
뉴욕에서 가장 높았던 이 건축은 그 높이 때문에 현대도시 뉴욕을 상징했으며 미국을 상징했고 나아가 서구의 자본주의를 상징하였다. 이 상징적 건물을 무참히 파괴함은 곧바로 그들에게는 승리의 성취였을 것이다. 그렇다. 이 세계무역센터는 그 높이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그런 높이의 건축을 마천루(摩天樓)라고 부른다. 하늘을 닦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도 같은 뜻의 skyscraper이니, 이는 우리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만용의 극치 아닌가.

인류가 동물과 다른 점은 직립한다는 것이다. 직립. 바로, 모든 물체는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중력의 섭리에 대한 저항이다. 이것이 인간을 자존하게 했으며 끊임없이 궁리하게 한 근본이었으므로 인류의 역사는 높이에 대한 추구의 역사와 다름 아니다.
이카루스의 전설은 이를 잘 시사한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의 미움을 사서 아들인 이카루스와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된 건축가 다이달로스는 감옥 속으로 날라 들어오는 새의 깃털을 모아서 밀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감옥을 빠져 나올 궁리를 한다. 드디어 날개를 다 만들게 되자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높이 날지 말 것을 주문한다. 높이 날면 태양열에 의해 밀납이 녹아 날개가 와해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날개를 달고 감옥 창살을 빠져 나와 날게 된 이카루스는 중력으로부터의 해방감에 도취한 나머지 아버지의 충고를 잊고 높이 날아 오른다. 태양에 가까이 이르자 그 열에 의해 밀납이 녹아 날개는 흩어지게 되고 결국 이카루스는 추락하여 멸망한다. 중력의 섭리를 거역한 불충의 대가였다.
예를 하나 더 들면 성경에, 노아의 홍수를 겪은 인간들이 그 자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벨탑을 짓기 시작하지만 결국 언어의 불일치로 공사 도중에 탑은 무너지고 만다. 아마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 인간의 만용에 대한 신의 노여움을 교훈적으로 기록한 이야기다.

그러나 인간의 높이에 대한 욕망은 그런 참변을 쉽게 잊게 할 정도의 강렬한 것이어서 수많은 대가를 치르면서도 끊임없이 땅을 떠나 하늘로 솟아 오르고자 하였다. 피라미드가 그랬고 기념탑들이 그랬으며 특별히 종교건축물들을 통하여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했던 이 숨길 수 없었던 욕망은 드디어 고딕시대에 이르러 그 결실을 보고 말았다.
고딕건축, 건축역사 상 가장 하이테크한 시대로 간주되는 이 고딕의 기술은 버트레스와 프리잉거더라는 건축구조를 창안하면서 중력을 거역하며 높이 솟구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게 승리를 안겨다 준다. 유럽의 도시마다 고딕의 첨탑이 솟았다. 그 이후에 전개된 르네상스, 소위 인본주의는-모든 만유의 중심에 인간(지극히 제한적 부류)이 존재한다는 그런 자신감에 도달한 인류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시대정신이었으며 바로크시대에 이르면 피렌체인들에게 이제 높이의 건축은 신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시를 위해 반드시 남보다 높이 세워야 하는 가문의 직무였다. 무엇보다도 기계기술이 발달한 근대에 이르러 높이 올라가게 되는 방편들이 속속 등장했으니 바야흐로 마천루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이게 그 911 비극의 역사인 것이다.

오늘날 고층 오피스빌딩은 이제 높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하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위상을 가지지 못할 바에야, 그 독자성을 높이에서 찾지 않고 이지러진 형태에서 찾는다.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고층빌딩은 단순할수록 그 박진감이 배가 된다고 여겼으며 어떤 빌딩은 땅을 조금 파서 그 속에서 분출하듯 솟게 하기도 하였다. 그런 모더니즘의 시대에는 그런 진정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진정성이 빈정거리로 등장하게 된 새로운 이 시대에 발표되는 고층빌딩의 형상은 비비꼬거나 비틀어지고 넘어질 듯 휘청거리며 공간을 허무하게 점거하는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며 경쟁적으로 과도한 상징에 몰두한다. 그리고 외벽을 이루는 재료는 본체와는 유리된 체 기묘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상하이나 두바이의 도심을 보면 무엇을 느끼는가. 혹시 공동묘지 비석들의 집합처럼 허황된 장식탑들의 무덤일 뿐 아닌가. 마치 약효가 갈수록 떨어진 중증의 약물중독환자가 마지막으로 맞는 고단위 마약처럼 아우성이다. 세기말이면 유행병처럼 번지던 건축의 허무한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다.

나는 바르게 지어야 했다. 설혹 이게 나만의 강박관념이며 결벽증에 사로잡혔다고 비난 받더라도 나는 어긋나게 지을 수 없었다.

휴맥스
휴맥스의 변사장은 박노해시인의 주선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셋톱박스라는 위성수신기 하나로 세계적 입지를 마련한 소위 1세대 벤처기업인이다. 몇 번의 만남에서 나는 그가, 의문부호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참으로 발견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아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런 기업가였다. 그런 이에게 허무한 이미지를 창궐하는 비틀어진 건축은 어울리는 옷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만나게 된 휴맥스의 구성원들 모두가 그랬다. 이 시대에 귀중한 집단이었으며 건강한 사회공동체였다.
그들의 요구조건은 그들 회사가 정해놓은 풍부하지 않은 공사비를 초과하지 말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을 정도로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맡겼다. 제시한 공사비는 그 당시 그런 규모의 오피스빌딩 공사비에 한참 모자라는 평당 단가였다. 그러나 그들이 자금이 없어서 그런 한계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너무 화려해질 건축으로 그들의 검박하게 사는 모습의 변질이었다. 그들은 그만큼 스스로에 대해 엄격했던 것이다. 나는 기준으로 삼은 비용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고 결국은 놀라운 그 한계를 지켰다. 설계에서는 물론 전 시공과정에 걸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려야 했다.

 

건축 속의 작은 도시
한 오피스 빌딩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개 강한 동질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 동질적 사회는 지연이나 혈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처럼 항구적이거나 영속적이거나 무조건적이 아니다. 어느 일정한 기간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한적 공동체이며 불연속적 사회이다. 즉 이 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 이 사회는 임시 사회이다.
그러한 임시사회의 공간은 무미하고 건조한 것이 좋다. 그래서 오피스 빌딩의 계획은 상투적 수치에 의해 수립되고 기술적 장치에 의해 세워진다. 코어라는 기계와 설비로 가득찬 서비스 공간, 형광등 아래 줄지어 집무하는 공간, 이들의 크기와 위치, 가장 효율적인 모듈 등등이 계획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 왔으며 보다 쾌적한 업무환경을 만드는 설비조건과 구조방식 등이 새로운 기술 조건이었다. 하얀 형광등 아래서 집단으로 흰 셔츠에 넥타이를 두르고 말없이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며 정해진 시간에 의해 공장부속품처럼 이동하는 오피스인들….이런 삶이 평균치적 현대적 업무공간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휴맥스를 이루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대단히 젊은 연령이며 그 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와 도전을 즐기는 집단이다. 관성을 거부하고 진취적이며 부단히 새로움을 찾는 이들에게 구태의연한 오피스 계획 각론은 낡은 유물일 것이다. 비틀어지지 않지만 새로운 오피스풍경을 만들어야 했다.

 

새로운 풍경의 오피스 빌딩. 이는 주어진 도시와의 접점에서 그 실마리가 생겼다. 휴맥스의 사옥부지는 분당이라는 신기루의 도시 등어리 끝에 있었다. 4,50만명이 사는 도시를 4,5년만에 건설했으니 이 도시야말로 현대의 불가사의다. 그러나 이 도시는 놀라운 속도로 안정되어 이제는 한국의 모든 신도시의 표본적 위상을 차지했으니, 이런 도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질타해마지 않는 내가 갖는 당혹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휴맥스 부지는 인근 필지들의 건설이 모두 끝난 상태였으므로 마치 마지막 점을 기다리는 듯 했으며 그 위치 또한 탄천 변에 있어 분당과 외부를 이어주는 경계지점이었다. 분당의 중심부에 등뼈 같은 축이 구부러지는 곳에서 탄천과 마주하는 도시의 가장자리이다. 주변에 솟아 있는 건물들 모두가 분당을 탄천과 그 너머의 자연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블랙박스의 형태였으며 마지막으로 남은 이 땅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최고 층수 12층이라는 법적 조건은 한편으로는 불행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한 것이었다. 고층화되는 유혹, 어떤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완벽히 벗어 나게 하여 외관은 주어진 법규적 볼륨만 표현하면 되는 일이었다. 반면에 한 층의 면적이 900평에 가까우며 그것도 거의 정방형의 평면이어서 가운데 실내공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답답한 공간감을 해소하기 위한 처리가 이 건축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으며 동시에 이 건축의 성격을 이루는 핵심이었다.

장소적으로 분당의 창문을 여기서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 분당의 도시풍경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접합하는 틀로서 휴맥스 건축이 가져야 하는 투명성을 먼저 상상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건축이 투명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는 열린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이 더욱 좋은 도시 풍경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 투명한 건축을 위해 코어는 양측으로 분리하여 배치되는 게 타당하다. 이는 또한 북측에 인접한 오피스텔과 남측의 주차빌딩과 시각적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논리적이었으며 동시에 분당의 내부와 탄천 너머의 주변 경관을 내부에 아무런 장벽 없이 연결할 수 있게 한다. 그 사이에 휴맥스 공동체의 풍경이 놓여진다. 이는 필히 이 공동체의 조직이 어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측 코어가 되면 그로 인해 깊어지는 내부공간의 처리문제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이 공간을 도시의 조직으로 만들 필요를 가졌다. 즉 내부 속에 길도 있고 광장도 있으며 공원도 있고 일터도 있는 조직-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의 켜를 적층시키는 방법을 만든다.
먼저 탄천과 넓고 경사진 광장으로 연결된 진입공간은 이 작은 도시의 중앙광장이다. 여기에 서면 위로부터 11개층을 관통하며 내려오는 빛살들이 대나무의 잎을 두드리며 반사하여 지하까지 부딪힌다. 한 층의 깊이가 커지는 내부공간의 가운데를 하늘로 뚫은 덕분이었다. 13개 층을 관통하는 이 마당은 각 층별로 서로 다른 공간 구조를 가지면서 수직적으로 연결된다. 야콥의 사다리 같은 계단과 타임 머신 같은 엘리베이터가 그들을 연결한다. 때로는 외부로, 때로는 내부로 더러는 작은 공원으로 또는 작은 광장으로 다른 모습을 가지는 이 곳은 휴맥스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한 층의 공간 내부에도 또 다른 광장과 간선도로가 있고 집합도로와 막다른 길이 있다. 물론 공원도 있고 나무와 풀도 내부에서 자란다. 비와 눈이 내부 공간 속으로 내리며 밝은 햇살도 내부 깊이 떨어지게 된다. 이로써 모든 공간은 외부와 면하게 되고 비단 인공의 조명 없이도 내부는 밝기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각 사무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는 복도가 아니며 작은 길이어서 가로등이 빛을 내고 일부 천정은 하늘이어서 별빛 같은 조명등이 산개되어 있어 그 개념을 강조하고 하게 하였다.
특히 외부에 면한 부분은 검은 색이며 내부는 흰색이다. 아무튼 이 무채색들은 그 속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위한 배경이며 도시의 인프라스트락츄어이다. 물론 그 속의 식물들과 햇살의 움직임도 쉽게 감지될 것이다.

비단 2.000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크기 때문이 아니라, 임시사회인 오피스 빌딩의 생활이 젊은 시절의 참 아름답고 선한 기억으로 남기 원했다. 그래서 이 건축은 하나의 건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마을로 계획된 것이다. ‘휴맥스 빌리지’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피소드
나는 소위 1군이라는 시공회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대기업을 무기로 삼아 건설과정을 관성으로 몰아가려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연유로 좋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되도록이면 작은 규모의 건설업체가 선정되길 바랐지만 삼성이라는 재벌기업이 이를 맡게 되었을 때 다소 당황하였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현장소장으로 부임한 최소장과 그의 후임으로 온 강소장이 지휘하는 현장은 놀라울 정도로 헌신적이었으며 조직적이었고 문제가 생기면 항상 긍정적으로 해결했다.

하마터면 이 공사의 감리를 P감리전문회사가 맡을 뻔 했다. 도대체가 한국 땅에서만 기형적으로 존재하는 소위 감리전문회사의 폐해를 일반 건축주는 모를 수 밖에 없다. 아니다. 외국이름에다 전문화 된 듯 이미지를 풍기니 속을 수 밖에 없다. 자기가 낳은 애를 자기가 기르지 못하게 하는 비 윤리적인 이런 일이 이 땅의 건축문화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임에도 정부에서조차 이를 조장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주변에서 그런 제안을 받았던 변사장은 내게 의견을 물은 후 그 일을 다시는 거론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다면 이 건축은 크게 변질되었을 게 틀림없다.

건물의 준공식이 있던 날, 나는 지극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동료 기업인들을 모아서 개최한 입주축하연에서도 나는 초청받아 강의하는 순서를 가졌다. 아마도 새로운 빌딩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았던 만큼 그런 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 모든 게 휴맥스 변사장의 깊은 배려였다.
좋은 삶은 좋은 건축에서 비롯된다. 그 좋은 건축은 좋은 건축가가 만드는 게 틀림없다. 동시에 좋은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가 만드는 것도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