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맥스 빌리지

2002. 7. 25

한 오피스 빌딩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개 강한 동질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 동질적 사회는 지연이나 혈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처럼 항구적이거나 영속적이거나 무조건적이 아니다. 어느 일정한 기간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한적 공동체이며 불연속적 사회이다. 즉 이 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 이 사회는 임시 사회이다.
그러한 임시사회의 공간은 무미하고 건조한 것이 좋다. 그래서 오피스 빌딩의 계획은 상투적 수치에 의해 수립되고 기술적 장치에 의해 세워진다. 코어라는 기계와 설비로 가득찬 서비스 공간, 형광등 아래 줄지어 집무하는 공간, 이들의 크기와 위치, 가장 효율적인 모듈 등등이 계획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 왔으며 보다 쾌적한 업무환경을 만드는 설비조건과 구조방식 등이 새로운 기술 조건이었다. 더욱 근심스러운 일은 오피스 빌딩이 하나의 상징이나 기념비처럼 도시 속에 우뚝 서는 일이다. 마치 도심은 공동묘지 비석들의 집합처럼 허황된 장식탑들의 무덤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휴맥스를 이루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대단히 젊은 연령이며 그 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와 도전을 즐기는 집단이다. 관성을 거부하고 진취적이며 부단히 새로움을 찾는 이들에게 구태의연한 오피스 계획 각론은 낡은 유물일 것이다.

새로운 오피스 빌딩. 이는 주어진 도시와의 접점에서 그 실마리가 생겼다.
땅은 계획도시 분당의 경계부분에 있었다. 분당의 중심부에 등뼈 같은 축이 구부러지는 곳에서 탄천과 마주하는 도시의 가장자리이다. 주변에 솟아 있는 건물들 모두가 분당을 탄천과 그 너머의 자연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블랙박스의 형태이다.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이 땅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분당의 창문을 여기서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 분당의 도시풍경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접합하는 틀로서 휴맥스 건축은 투명하다. 물론 이 건축이 투명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는 열린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이 더욱 좋은 도시 풍경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이 열린 사회의 공동성을 확보하는 일은 내부공간에서 만들어 진다. 한 층의 깊이가 커지는 내부공간의 가운데에 마당을 만들어 하늘로 뚫는 일이었다. 13개 층을 관통하는 이 마당은 각 층별로 서로 다른 공간 구조를 가지면서 수직적으로 연결된다. 야콥의 사다리 같은 계단과 타임 머신 같은 엘리베이터가 그들을 연결한다. 때로는 외부로, 때로는 내부로 더러는 작은 공원으로 또는 작은 광장으로 다른 모습을 가지는 이 곳은 휴맥스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 건축은 작은 도시조직을 가지고 있다. 내부에도 광장과 간선도로가 있고 집합도로와 막다른 길이 있기도 하다. 물론 공원도 있고 나무와 풀도 내부에서 자란다. 비와 눈이 내부 공간 속으로 내리며 밝은 햇살도 내부 깊이 떨어지게 된다.
비단 2.000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크기 때문이 아니라, 임시사회인 오피스 빌딩의 생활이 젊은 시절의 참 아름답고 선한 기억으로 남기 위해, 이 건축은 하나의 건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마을로 계획된 것이다. 그래서 휴맥스 빌리지라고 이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