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위 도시’ 서울

2006. 2. 21

작년, 어느 국제컨설팅업체가 세계 215개 도시의 삶의 질을 평가하면서 서울을 90위로 올려놓았다. 사실 나도 서울의 도시환경의 열악함에 대해서 줄곧 비판하기도 하고 그렇게 만든 개발업자들의 행태와 분별없는 정부에 대해서 열을 내어 질타하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 은근히 부아가 난다. 서울이 그렇게 나쁜가?
세계에 천만 명의 인구를 갖는 대도시가 서울을 비롯해서 약 20개 정도 있지만, 내가 짐짓 판단하기에는 사실 서울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단연코 없다. 그것은 자연환경 때문이다. 삶의 질을 위한 기준으로 삼는 도시인 뉴욕이나 런던, 파리 등은 죄다 평지 위에 건설한 도시며 아시아의 베이징이나 도쿄도 그렇다. 그 까닭으로 그들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인공구조물의 건립이 필수적이다. 마천루나 빅 벤, 에펠탑 혹은 천안문 광장 같은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을 통해 도시풍경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자연풍경 없는 도시들이다.
그러나 서울이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채택이 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과 물길들이 만든 풍경이었으므로 서울은 애초에 그 도시이미지가 정해졌다. 따라서 서울의 건축물은 자연환경에 맞게끔 고만고만하게 지으면 그뿐이었다. 아무리 현대의 못난 우리들이 제멋대로 인공구조물을 만든다 하여도 서울의 산들과 물길들은 여전히 있으므로 언젠가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지점이 명쾌하다고 믿었다. 최근 그 믿음을 확인하게 된 일 생겼다.
지난 달 대보름날 나는 문화재위원들과 함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정상에 등반하는 기회를 가졌다. 청와대 경비로 오랫동안 일반에게 출입이 금지된 북악산의 서울성곽을 일반에게 개방하기 위한 시범답사였는데, 고도 서울의 북문인 숙정문을 지나 성곽 길을 따라 오른 나는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서울 성곽 자체도 물건 중에 물건이려니와 그 성곽과 북악산 기슭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은, 아 너무도 아름다운 삶 터였다. 무학대사가 이곳을 오르자마자 환호했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서울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북악산 기슭이며 멀리 보이는 남산과 한강 그 너머의 아스라한 산하, 그 속의 양지바른 터들… 비록 분별없는 건축물과 우리의 못난 삶이 이따금 풍경을 해치기는 하나 대수가 아니었으며,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원형질이 여전히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세계도시 순위를 결정한 그 사람들이 여기를 올라와 보았어야 한다. 풍경만은 서울이 단연코 1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