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mh memorial

2009. 7. 23

노무현 전대통령의 투신,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우리 시대에 엄청난 충격을 주며, 남은자 된 모두들 자신에게 노무현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성찰하게 했다. 나는 ‘오늘’이라는 한 기독교 잡지의 요청을 받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래와 같이 썼다. ■ “예수님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지요. 스스로를 제도권 밖으로 나가셔서 제도권 속을 질타하시고 변화시키셨습니다. 자발적 이방인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이를 참 지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계 속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경계 밖으로 자신을 내몰아 자각하여 새롭게 되기를 원하는 자, 그런 이방인의 삶을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그러나 그렇듯, 문명의 안온함을 뒤로하고 거친 광야로 나가기를 즐겨 하는 그런 이들 때문에 우리는 진보합니다. 노무현은 그런 이였습니다.”(‘오늘’ 2009.7-8호) ■ 그의 유언에 따라 ‘작은 비석’ 건립을 위한 위원회가 결성되고 이에 나도 참여하게 되었을 때, 작은 비석으로 표현된 노무현의 묘는, 그런 ‘자발적 이방인’을 위한 기념적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먼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국립묘지의 여느 대통령 묘역처럼 저 멀리 높이 있는 게 아니라, 거리로 광장으로 내려와 우리의 곁에 있는 풍경이 더욱 그다운 상상일 것이다. ■ 위치는 현장방문을 통하여 그렇게 선택되었다. 일천 평 남짓한 삼각형의 땅 위로는 마침 두 개의 물줄기가 전체 영역을 삼등분하고 있었다. 이는 여지없이 장소의 성격을 확정시켜, 진입과 대기 그리고 참배라는 행위의 절차를 그대로 장소화한 것처럼 보였다. 장소가 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비일상의 장소인 만큼, 일상의 길 높이에서 일 미터를 들어 올렸다. 지형에 따라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내려가고, 머무르며, 오르는 이 바닥을, 추모기간 중 시민들이 노랑리본에 애절하게 쓴 글들을 화강석 박석에 새겨, 이들로 포장하자고 했다. 많은 세월이 지나면 그 염원들은 달아서 없어질 것이며 기억만 남을 것이다. 장소를 한정하기 위해, 끝 경계에 60 미터 길이의 코르텐 벽을 세웠다. 침묵의 형태로 이 장소를 긴장시킬 이 강판의 벽은, 시간에 따라 녹슬며 변화하는 모습으로 여기 풍경을 기억하게 된다. ‘작은 비석’은 유골함의 덮개로 쓰이는 바윗돌을 그대로 쓰기로 했으며, 이 바윗돌은 다시 코르텐 강판 위에 놓이게 하여 그 영역성을 확보하게 했다. 주변을 소나무로 두르게 되면 봉화산 기슭의 소나무와 연결되어, 이 장소는 세상 속에 비로소 정착되게 될 것이다. ■ 이 장소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원래의 땅이 지녀왔던 고유함에 대한 발견이다. 여기에 새로운 소망이 더해져 특별함을 만들고, 결국 여기를 지나는 시간과 사연들이, 이 장소의 풍경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우리들의 선한 기억을 만든다. 건축은 공간으로 구축되지만, 시간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