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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망 20070220

‘빈자의 미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1992년 4.3그룹 건축전시회에서였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이 전시회는 한국건축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기억한다. 14명의 젊은 건축가들이, 동숭동의 인공화랑에서 기둥처럼 설치된 전시대 위에 각자의 건축이념을 새겨 전시한 풍경은 이전의 한국건축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14개 사각 기둥에 새긴 패기 찬 건축을 향하여 더러는 탐미적이라거나 혹은 아방가르드라고도 했으며 더러는 관념적이며 추상적이라고 비평을 던지게 했던 이 작은 전시회는, 모순으로 엉겨 붙었던 기성건축계에 새로운 성찰을 촉구하였고 건축학도들에게는 자극적 환상도 던졌다. 여전히 한국건축의 현실은 척박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의 건축지형에라도 이른 데는 그 전시회의 영향에 힘입은 바 있다고 여긴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두 가지 분명한 소득이 있었다. 하나는 그 전시회를 통해서 그룹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서로의 확인이 첫째인데 이는 각자 건축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한 계기였으며, 둘째는 그 동안 2,3년을 계속하던 탐색기의 종결을 의미했다. 그래서, 4.3 그룹은 이듬해 한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한 후 묵시적으로 각자가 정한 서로 다른 밤바다를 향해 항해하기 위해 흩어지고 만다.
누구보다도, 오랜 기간 건축 수련에 몰두해 왔었으나 급기야 길잡이 잃은 채 헤매던 나에게, 그 전시회는 내가 왜 진정성으로 건축하는 저들과도 달라야 하는가를 확인하는 귀한 계기였으며 그로써 내 건축의 소중한 출발점이었다.
그 ‘빈자의 미학’을 책으로 묶어서 출간한 것은 1996년 초, 런던의 AA스쿨의 초청강연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이미 해외강연을 몇 차례 하면서 건축에 나의 사유를 간단한 글로 전달하는 것이 요긴하게 생각되던 차였고 쌓인 강의노트를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1992년의 4.3전시회의 책자에 실렸던 글과 1993년에 발간한 에세이집에 수록되었던 ‘현대의 유적’을 바탕으로 1996년 초간이 나오게 된 것이다.
공간시절에 나를 도와 일하기도 했던 전진삼씨가 편집을 맡아 미건사에서 발간된 이 작은 책은 나의 강한 의도로 전체가 묶이는 바람에, 읽기에 다소 불편한 책이 되고 말았다. 텍스트는 한글과 영어가 같은 면에서 펼쳐져야 한다고 말했고, 글 내용에 인용되는 이미지들은 그것대로 긴 주석을 달면서 독립되어 전개되어야 했으며 더불어서 내 글을 바탕으로 만든 내 건축 또한 독립되어 전체 책으로 퍼져있어야 한다고 우겼다. 내 건축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처럼 중첩된 레이어들을 만든 것이다. 사실은 이 작은 책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내 주장을 담은 책이므로, 발행되는 최소 부수를 내가 다 사서 내 건축을 설명하는 용도로 배부하기로 했기 때문이었으니, 책의 디자인도 내 뜻을 우긴 것이었다.
그러나 건축서적 판매상들이 큰 책 팔면서 끼워주기 까지 하던 이 만만한 책이 ‘비공식’ 베스트 스테디 셀러가 될 정도로 시중에 나돌게 되면서, 나는 ‘빈자의 미학’의 저자로서 인구에 회자되었고, 곧이어 그 사실에 대해 줄곧 추궁당하며 ‘빈자의 미학’에 대한 건축만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동기생인 김진애는 일찍이 내가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에 대해 근심하여 주었다. 이상해교수는 ‘빈자의 미학’이 얼마나 좋은 말인지 진정 아느냐고 추궁하였으며 끝까지 지켜보는 감시자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민현식선배는 나의 선언이 헛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취해야 할 행동지침을 내가 사는 모습인 양, 내가 부탁한 책의 발문에서 낱낱이 기술하고 말았다. - 그 이후로 나는 근본주의자로 살아야 했다.
내가 만든 우리였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나는 너무 자유로웠다. 오히려 그 틀을 벗어 나는 조짐만 보이면 감시의 눈동자들이 번득이고 있었으니 주장을 번복할 배짱이 없는 나는 이내 틀 속으로 들어왔고 그 속의 자유함을 새록새록 깨닫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했다. 그 ‘빈자의 미학’이라는 틀 속에서의 자유함은 내게는 너무도 편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건축수업을 한답시고 익숙해져야 했던 수련이라는 육체적 정신적 억제의 힘이 원래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기억들을 지우게 한 것일 게다. 어릴 적 양육되었던 내 고유의 환경이 다시 자랐으며 잠재웠던 성정이 다시 살았고 오래 전 품었던 소망이 다시 해빙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틀이 투명한 성질의 것이어서, 틀 밖의 많은 지식과 경험이 관찰될 수 있었다. 아니다. 건전한 공동체 건설을 목표하는 ‘빈자의 미학’이 요구하는 바로는 오히려 끊임없이 외부를 관찰해야 했으며 항상 기록하고 때로는 고발하여야 했다. ‘빈자의 미학’은 바깥의 그 모든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였으니 이른 바 ‘현대의 유적’, ‘urban void’, ‘문화풍경 culturescape’, ‘지문 landscript’ 등이 그 필터를 걸러 생성된 건축어휘들이다. 물론 그런 새로운 언설은 반드시 나의 건축적 실천이 따르도록 나를 채찍질했다. 설혹 실패했을 때도 그 실패의 경험은 또 다른 텍스트가 되었다.
그래서 언젠가의 강연에서, ‘빈자의 미학’을 출간한 지 10년이 되는 해에는 그때까지 축적되는 실천으로 보다 진보되고 풍부하며 구체적인 내용으로 개정판을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했으며 어느 정도 강박감을 느꼈지만 자신도 있었다.
그러다가 배형민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배교수는 ‘빈자의 미학’ 초간이 나왔을 때, 영문 텍스트를 한번 리뷰 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이를 지키지 못한 걸 마음에 담고 있다고 여기고만 있었는데 그가 학교수업에 그 책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작지 않은 압박을 느꼈다. 그렇지 않은가. 10년 전에 치기 어린 젊은 건축가가 쓴 졸문을 지금에도 아카데미에 끌어들여 해부한다는 것이다. 방어해야 할 필요를 느꼈으니 그래서 개정보완을 하는 일이 급박해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영문으로 쓴 논문 한 편을 보내줘서 읽게 되었는데, 벽을 주제로 김수근선생의 건축과 나의 건축을 비교하면서 쓴 글이었다. 아마도 이 책의 어디에선가 소개가 될 것이라고 여겨서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상당한 흥미로운 것이었으며 자못 새로운 시각이었다. 이미 나의 건축과 언설은 배교수의 건축탐구 대상에 깊게 포착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가인 내가 지금 ‘빈자의 미학’을 문장으로 보완해 발표하는 일이 적절한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빈자의 미학’ 초간 10년을 기념한 2006년 개정판에 관해 영문의 수정을 협의하러 온 그와 동녘출판사의 이상희씨에게 내가 다른 제안을 한 것이다. 배교수의 책을 발간할 것을 권유하였다. ‘빈자의 미학’의 원문과 그 이후 10 여 년 동안 내가 작업한 건축에 대해 배교수의 비평서를 저술하면 어떠하냐는 나의 제안에, 끝내 그가 동의하였다. 배교수가 다소 망설인 이유를 안다. 건축사가인 그가 학교선배인 내 청을 받아 내 건축의 비평서를 만든다는 일이 불편부당한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될까 봐 혹은 시시때때로 나와 불편한 관계가 될 일이 걱정되었을 게다.
그러나 내 언설과 내 건축 그리고 지나온 10년간의 실천을 어쨌든 정리할 필요를 다시 느끼고 있었으며, 나 스스로 회고하고 반문하는 일보다, 배교수 같은 진정성으로 학문하는 이에게 재단되는 일은, 그가 아무리 험한 말을 쏟아도, 나를 위해서도 어쩌면 우리 건축사회를 위해서도 귀한 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자료제공 및 현장확인에 대한 편의만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전적으로 새로운 책의 책임은 배교수에 있음도 강조했다.
역시 그는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더니 출간을 약속한 2006년을 드디어 넘기고 말았다. 그의 책이므로 재촉할 수도 없었다. 그가 쓴 글을 내게 보여주지도 않겠지만 내가 책이 나오기 전에 보자고 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내 건축의 거의 모든 작업들을 현장답사하며 사실을 확인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보면서, 내 건축의 크기가 민망스러웠다. 내가 좀더 큰 건축가일 수 있었다면 그가 행복할 것이라는 미안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책의 출간으로 나는 작은 흥분을 느낀다. 내 스스로 ‘증보판’을 다시 내는 어리석음을 피하게 된 즐거움이 아니다. 이 책으로 이미 완악해질 대로 완악해진 우리의 건축현실이 나아지리라는 게 망상이라는 것은 오래 전에 안다. 또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척박한 한국의 건축현실에서 무너지는 후배건축가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정상적인 대화가 오랫동안 실종되어 대화의 부재가 일상이 된 우리 건축사회의 균열에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래서 민망스러운 내 건축으로가 아니라 훨씬 나은 선배 동료 건축가들의 건축정신으로 배교수 같은 탁견의 건축사가가 신명으로 한국건축의 담론을 정제하기를, 그래서 한국의 현대건축을 종속적 서러움에서 빠져 나오게 하길 소망한다. 이것도 헛되다면 나는 한국의 건축사회에서 다시는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나를 구속하는 틀의 차원에서 떠나 이 책으로 인해 내가 불능의 우물 속에 빠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하드라도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다. 배교수가 어떤 내용으로 책을 만들든 이 책에서 그가 언급한 모든 것을 깊은 호흡으로 받아 들일 것이다.
정해년 설날아침 이로재에서